MB, 수정안 밀어붙이는 이유… 전체 여론 우호적, 朴 독주 차단·친이 결집 효과도

입력 2010-01-13 22:06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세종 목장의 결투’가 시작됐다. 18대 총선 공천 파동과 지난해 미디어법 파동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세종시 논란은 ‘행정부처를 이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됐으나, 이젠 대통령의 국정운영 장악력과 6월 지방선거, 19대 총선, 더 나아가 차기 대권 지형이 맞물리는 대형 사안으로 발전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세종시 수정을 추진할까.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서는 최근 ‘세종시 문제가 장기전으로 가도, 결코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말들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3일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대립할수록 박 전 대표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뭔가를 바꾸고 새롭게 추진하는 이미지가 결사반대하는 이미지보다 긍정적이라는 게 청와대측 판단이다. 충청권 여론을 제외하면, 국민 전체 여론이 수정안을 선호한다는 점도 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환경이다. 세종시 수정은 경제위기 선방, G20정상회의 유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등 이 대통령의 ‘일하는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반면 타협하지 않고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이미지는 결코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 독보적인 박 전 대표의 위상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종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 이후 정운찬 국무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 친이계 후보군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박 전 대표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게 된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의 독주를 막을 차기 후보군이 형성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친이계의 결집도 부수적인 효과다. 이 대통령 집권 이후 개국 공신들은 권력투쟁 등을 거치면서 파편화됐다. 반면 친박계는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런데 세종시 문제가 불거지면서 친이계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박 전 대표가 강력하게 반대할수록 위기감을 느낀 친이계의 결집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세종시 수정 여부에 상관없이 처리되는 과정이나 논의 방식에 따라 정치적 이해득실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 기반도 고려해야 할 변수다. 이 대통령의 지지 근거는 영남보다는 수도권이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격화되면서, 수도권은 수정안 쪽에 서 있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을 통해 전통적인 자신의 지지기반인 수도권을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충청보다는 수도권에서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는 이 대통령의 입장은 내후년 대선 승리를 위해 충청민심을 잡아야 하는 박 전 대표의 입장과 상반된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