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금연 진료 문턱을 낮춰라

입력 2010-01-13 18:12


세밑 금연을 결심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금연 성공을 위해선 흡연자의 굳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건 의사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흡연자는 의지로 금연을 시도하고 안 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의사는 상담과 약물 치료 등을 통해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바로 흡연이 ‘니코틴 중독 질환’이란 사실을 흡연자 본인은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코틴은 헤로인, 코카인 같은 마약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담배 한 개비에 대략 1㎎ 정도 들어 있다. 흡연을 통해 습관적으로 흡입한 니코틴은 흡연자의 흡연 욕구를 점점 강화시키고 내성을 증가시킨다. 금연이 개인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인 의지만으로 담배를 끊을 확률은 100명 중 3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비해 의사의 전문 상담과 약물 치료 등을 함께 받으면 금연 성공률은 50%를 넘는다. 흡연의 폐해와 효과적인 금연 방법을 알려주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금연을 시도해서 실패했거나 니코틴껌, 패치 등 간단한 금연 보조요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주저 말고 병원 문을 두드리고 전문 금연 치료에 도전해 보라.

현재 전국 보건소에는 금연 클리닉이 대부분 설치돼 무료로 운영되고 있으며 성과도 내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 집계 결과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국민은 1년에 20만명에 그치고 있다. 한정된 인력 탓이다. 게다가 간호사나 건강상담사가 관장하고 있어 상담 수준이나 사용하는 약이 1차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더욱이 전국의 내과, 가정의학과, 정신과 등 일반 개업의나 병원 근무 의사 모두 금연 진료가 가능하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금연 진료 서비스를 따로 정해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곳은 몇몇 대학병원밖에 없다.

그나마 이런 대학병원에서 금연 치료를 받으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금연 진료 행위와 치료 약물 모두 (건강보험)비급여 대상이기 때문에 진찰료와 약값을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처방 약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월 10만∼20만원이 든다. 이 정도 비용이면 한 달 담뱃값과 비슷하거나 2∼3배 더 드는 셈. 일반 서민과 저소득층에겐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실제로 금연 진료 경험이 있는 의사 9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원인은 흡연자의 개인적 기호 및 습관이 36.2%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비싼 금연 진료 비용(29.5%)이었다.

미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선진 금연정책의 일환으로 금연 진료와 일부 치료제의 보험급여화를 통해 흡연자 관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장소 금연 확대, 흡연 광고 규제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금연 의향자들의 금연 성공을 위한 진료 환경 조성은 미흡하다. 특히 니코틴 의존도가 높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진료 접근성과 순응도를 높이려면 보험 적용을 통해 금연 진료의 문턱을 낮추는 게 시급하다.

국립암센터 서홍관 박사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금연 진료와 약을 보험급여화하면 1년에 2000억원 정도 건강보험 재정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암, 뇌졸중 등 특정 질환자에게만 보험 적용되는 CT나 MRI에 소요되는 재정 규모(연간 5000억∼6000억원)에 비하면 훨씬 적다. 하지만 그 효과는 그 어떤 보험급여화보다 국민 건강에 좋다.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성인 흡연율이 2008년 하반기를 저점으로 지난해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금연 정책의 도입과 시행이 절실한 시점이다.

민태원 생활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