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음모론
입력 2010-01-13 18:10
지난 연말 미국은 ‘성탄절 음모론’으로 떠들썩했다.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전파된 성탄절 음모론은 유통업계가 사람들을 세뇌시켜 경건한 성탄절을 선물 주고받는 날로 전락시켰다는 내용이었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등도 유통업체들이 판촉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고 보면 성탄절 선물 관행도 상업주의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상업주의 음모론의 전형은 미국에서 공화당이 집권할 때 빈번히 일어나는 전쟁이다. 공화당 배후에 군수업체들이 있고 공화당은 이들을 배불리기 위해 집권할 때마다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알면서도 내버려 둔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살려둬야 전쟁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음모론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말을 만들어내면 확대재생산되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을 쓴 영국 작가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이 세상 음모론의 95%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삼아야지, 너무 빠져들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충고했다.
음모론 중에는 황당무계한 것이 많은데 거기에 심취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장 황당한 것 중 하나가 외계인과 관련된 음모론. 지구문명은 외계인이 이룩했다느니 외계인이 지구 지도자와 결탁해 인류를 지배한다느니 하는 기상천외한 내용까지 있는데 이를 믿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어제 한 조간신문에 경기도 고양시에 떴다는 UFO 사진까지 게재됐으니 지금 동호인들 간에 접촉이 활발할 것 같다.
지난해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플루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음모론이 제기됐다. 바이러스가 멕시코에서 자연발생한 게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국경 인근 미군 생화학무기 실험실에서 탄생했으며, 이와 연계된 제약업체가 타미플루를 양산한 뒤 바이러스를 퍼트려 떼돈을 벌었다는 등의 얘기다.
음모론도 누가 제기했느냐에 따라 관심과 파장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유럽회의 의원총회 볼프강 보다르크 보건분과위원장은 최근 신종 플루 ‘대유행’이 제약회사들이 주도한 ‘허위 대유행’으로 금세기 최대 의학비리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대유행 선언을 한 세계보건기구(WHO) 내 일부 인사들이 제약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유럽회의는 이달 말 긴급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음모론이 비리로 발전할지 주목된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