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이야기] 물범은 어떻게 추위를 견디나

입력 2010-01-13 18:04


서해안 백령도 인근에 가면 바위에서 한가로이 털을 말리는 물범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 접근할라치면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도망쳐 버린다. 그래서 학자들이 물범을 포획하기 위해 수십 번 기회를 엿보아도 번번이 허탕치고 만다. 땅 위 생활을 포기하고 물속으로 돌아간 먼 옛날부터 물범은 물속에 맞게 몸을 적응시켜왔으니, 한번 바다로 들어가 버리면 사람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고 점성도 훨씬 큰 물이라는 3차원적 환경에 적응키 위해 물범의 몸체는 유선형이 되었고 앞뒤 발은 물갈퀴를 가진 지느러미처럼 바뀌었다. 머리는 작아지고 납작해졌으며, 귓바퀴는 아예 없어졌다. 잠수할 때는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 귓구멍과 콧구멍을 막았다 열었다 할 수 있다.

터질 듯 통통한 물범의 외모를 보면 알겠지만 털이 두텁지 않은 대신 두꺼운 피하지방층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같은 영하의 날씨에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바다라는 환경에 너무 잘 적응된 나머지 물범은 육지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앞발은 물속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는 방향타 역할 정도만 하다 보니 땅 위에서 상체를 세울 수 없고 대신 땅에 몸을 대고 꿈틀꿈틀 애벌레가 기어가듯 더디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쉴 때도 언제든 물로 뛰어들 수 있는 바위 위에서만 쉰다.



백령도의 물범은 겨울이면 중국 쪽으로 넘어가 1월에서 4월 사이 얼음 위에서 순백색 털로 덮인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한 달 동안 지방 함유량이 40∼60%나 되는 고열량의 어미젖을 먹는데, 이 엄청난 지방은 새끼의 피하지방을 급속도로 늘려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바닷속에서 몸이 쉽게 뜰 수 있도록 부력을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새끼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달뿐이다. 한 달이 지나면 어미에게 발정이 오고, 야속한 어미는 수컷과 사랑하기에 바빠 새끼에게는 한 방울의 젖도 주지 않는다. 이때부터 새끼는 살아남기 위해 차가운 겨울바다에 뛰어들어 먹이 사냥을 시작해야 한다.

동물원에서도 새끼 물범을 위해 미꾸라지를 물에 풀어주고 작은 생선을 매달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냥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실패하게 되면 사육사는 하루 두세 차례 새끼 물범의 입을 벌리고 먹이를 강제로 넣어주기 시작한다. 스스로 먹이를 먹을 때까지 사육사와 꼬마 물범의 기 싸움은 계속되고 초봄에 시작됐던 일이 여름 들어 끝날 때까지 사육사는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