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사역자 백미경씨의 가슴 시린 이야기 “울보됐지만 행복합니다”

입력 2010-01-13 17:59


무엇이든 엄마에게 떼만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었다. 세상이 모두 이 아이를 바보라고 조롱해도 엄마는 가장 사랑스러운 ‘떼보’라고 불렀다. 떼보 때문에 ‘울보’가 된 엄마는 지금은 ‘술보’ 남편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때 자살충동으로까지 몰고 간 남편과 절망적인 아들이었지만 이제 엄마는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회복된 가정 이야기를 하며 이 별명들을 버렸다.

찬양사역자 백미경(40·정읍시민교회 집사)씨.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백씨는 172㎝ 키에 서글서글한 표정이어서 울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녀 이야기를 묻자 지난해 12월 24일 해병대로 입대한 큰아들 생각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20년 전 백씨는 부모의 말씀에 따라 얼떨결에 전북 장수에서 김제의 불신가정으로 시집갔다. 결혼 후 알게 된 남편의 주벽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두 아들 김태민(20)씨와 태옥(18)군을 얻었다. 태옥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발육 속도가 다른 아이에 비해 늦고 탈장, 사시, 언어장애 등을 보였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백씨는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태옥이는 평생 5∼6세의 지능으로 사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장애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일 뿐임을 이해해주기 바라며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행히 태옥이를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반면 언어·정신지체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 차츰 스트레스를 주는 자모들, 장애의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는 남편, 도발적이고 통제가 어려워지는 태옥이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꼈다. “이 아이와 죽어버리면 편할까?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아이라는 원망도 했어요.”

낙심과 좌절 속에 지내던 어느 날 백씨는 교회 부흥회에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됐다. “네가 받을 축복이 많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로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며 약한 모태신앙에서 하나님과 강렬한 첫사랑에 빠졌다. 찬양사역도 함께했다. 장애아의 엄마가 아이는 돌보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4, 5학년 무렵 보조원이 지원돼 태옥이 걱정은 잠시 접을 수 있었다. 찬양을 하며 그를 힘들게 했던 우울증이 치료됐다.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불행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중학교는 전주의 특수학교에 보내 주일에만 데려왔다. 처음 떨어지게 되면서 가족에게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태옥이가 저지른 일마다 자신이 피해자인 양 책망하던 남편이 아이를 데려오는 첫날 수고했다고 말했어요. 차갑게 아들을 밀어내기만 하던 남편이 관대해지고 살갑게 아이를 품어주었어요.”

아이를 떼어놓으면서 남편은 확연히 달라졌다. 술 담배도 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특수학교 졸업 후에는 어렵게 고교에 진학했으나 통합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두 달 만에 포기했다. 또다시 생이별을 할 수는 없었다. 현재 태옥이는 문성하 목사가 운영하는

‘정읍나눔의집’에서 악기를 배우며 난폭성도 줄었다.

백씨는 현재 장애인 권익보호를 위해 장애인 부모회와 장애인 교육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우와 장애우 가족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 장애인의 직업재활, 자립지원을 위한 활동도 펴고 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고자

‘아직도 가슴으로 크는 아이’(미성문화원)란 제목의 고백수기도 출간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