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사 가문의 드와이트 린튼 목사 별세

입력 2010-01-13 20:04

[미션라이프]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와 봉사활동에 헌신해온 선교사 린튼 가문의 어른인 드와이트 린튼(한국명 인도아) 목사가 11일 애틀랜타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린튼 목사는 11일 밤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위치한 체스트넛 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승용차편으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유족으로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부인 마지 여사와 3남2녀가 있다.

린튼 목사는 구한말 근대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1868~1925) 목사의 외손자다. 벨 목사의 딸 샬럿(한국명 인사례)과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1891~1960) 목사 사이에 넷째 아들로 태어나 오랫동안 선교와 봉사활동을 펴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 게인즈빌에 머물러 왔다.

청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1952년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 목사는 25년간 교육과 의료봉사활동에 헌신해 왔다. 73~78년에는 호남신학대 학장을 역임했다. 은퇴 후에는 지난 92년 세계적인 부흥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할 때 통역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린튼 목사는 린튼 가문이 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인도주의 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을 설립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의료와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인도적 대북지원 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또 91년에는 애틀랜타 인근 한인타운 밀집지역인 덜루스에 한인 이민2세들과 함께 ‘오픈도어 커뮤니티 교회’를 개척했다.

린튼 목사 외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는 1895년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뒤 나주, 목포, 광주 등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교, 병원, 교회를 세우며 헌신했다. 사위 윌리엄 린튼 목사도 장인의 뜻을 받들어 한국의 독립을 후원하고 59년 한국사회에 필요한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대전 한남대를 설립했다.

윌리엄 린튼 목사 슬하의 네 아들 중 셋째인 휴(한국명 인휴·1926~84)와 넷째인 드와이트 목사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과 의료활동을 펼쳤다. 휴 목사의 장남인 스티브(한국명 인세반)는 94년 유진벨재단을 설립하고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차남인 존(한국명 인요한)은 연세대 의대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외국인 진료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장례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는 고인의 한국에 대한 헌신을 고려해 유족과 협의를 거쳐 장례를 적극 지원키로 방침을 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