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순권] 환율·油價 먹구름과 대책
입력 2010-01-12 19:45
연초부터 환율·유가·물가 등 거시경제 변수들이 들썩거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연일 하락해 달러당 1120원대에 진입했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원화가치와 국제 유가가 모두 1년 3개월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무렵 수준으로 상승했다. 유가 상승과 함께 농축산물 가격, 가스 요금 등 생활물가도 꿈틀거리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은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세를 반영하므로 글로벌 달러 약세와 겹쳐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달러 약세 영향으로 상승 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의 원화가치와 유가 상승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기업들이 올해 경영 계획을 짤 때 전제로 한 환율 1100원 선에 바짝 접근해 있고 유가는 정부 전망치인 80달러 선을 넘어섰다. 정부의 올해 경제 운용과 기업의 경영에 예상치 못한 먹구름이 몰려온 것이다.
신3고 지속땐 더블딥 가능성
환율과 유가가 이렇게 불안할 경우 올해 5%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돼 수출 회복세를 낙관할 수 없는 가운데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수출 회복은 둔화되고 수입은 늘 것이다. 게다가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점도 수출 기업들에 큰 부담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까지 겹치면 물가 불안과 함께 경상수지가 악화돼 우리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연속적인 기준금리 동결로 시중금리는 오름세에 제동이 걸린 듯하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는 올해 시중금리 상승 압력은 점차 높아질 것이다. 시중금리 상승은 이자상환 부담을 높여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부진을 초래,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을 대체할 민간의 성장력 회복이 제한받을 수 있다.
원화가치·유가·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신3고가 지속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는 자칫 더블딥 혹은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 물가 및 고용 불안과 함께 금리 상승으로 7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의 위기가 심화될 경우 실제 느끼는 체감경기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경제 여건이 심상치 않은 상황인데도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면서 정국은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는 물론 여여 갈등이 심화돼 경제와 민생 현안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불안과 사회 혼란으로 지난해 어렵게 이뤄진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경기 침체 터널을 빠져나온 우리 경제의 회복세에 탄력을 붙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3고 파고를 잘 넘어야 한다. 환율은 방향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지나친 변동성 확대를 막아 수출 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운용의 패러다임 변화다. 수출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의 성장기여도를 높여야 원화 강세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고용확대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내수를 활성화할 수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야 소득이 향상돼 가계부채 부담이 경감되고 서민생활도 안정될 수 있다.
출구전략 차원의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되는 시점으로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유가 상승은 우리의 통제 밖에 놓여 있으므로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에너지 사용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난해 고환율 효과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됐던 수출 기업들은 진짜 실력을 보여야 할 때다.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하고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며 품질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내수의 성장기여도 높여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최근 미국의 가전 전시장을 참관하는 자리에서 “모든 부문이 자기 위치를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삼성도 까딱 잘못하면 10년 후에는 구멍가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방심하지 말고 모든 경제주체가 최선을 다해야 위기를 넘어 도약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3고와 정쟁의 파고에 놓인 정치권은 물론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경고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