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트비트 WCC 총무 설교 전문

입력 2010-01-12 16:06

형제 자매 여러분! 복되고 행복한 새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게 많습니다. 한 해의 시작은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주, 새로운 한달의 가능성으로 열게 됩니다. 새로운 십년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에 돌입했지만 세계는 지난 십년간 있었던 금융 위기, 기후 위기, 식량 위기, 테러와 폭력, 불공평, 여러 나라와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인권 탄압 등 수많은 위기를 계속해서 겪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매주 각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엔 이란, 이라크, 예멘이, 그리고 이번주엔 터키와 그리스, 사이프러스 등. 우리는 올 한 해도 지구촌 여러 나라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자유를 위한 뜨거운 관심으로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또한 21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의 내용과 모양을 결정할 새로운 십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거기엔 새로운 도전들이 놓여 있지만 수많은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져온 꿈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

시간은 저절로 열릴 거라는 것

문들은 저절로 열릴 거라는 것

마음은 저절로 열리게 될 거라는 것

산속의 샘들이 솟구쳐 오르리라는 것

어느 이른 아침,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항구로 미끄러져 갈 거라는 것

우리가 꾸는 꿈은 바로 이런 것


이것은 노르웨이의 시인 올라프 하우제의 시를 로버트 블라이가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고 있고, 내일도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사랑, 사랑의 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새해는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축복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WCC에게 새해는 새로운 총무가 부임한 해입니다. 저와 아내에게 새해는 우리 삶의 새로운 여정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제네바에 살면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에겐 새로운 동역자들과 함께 새로운 부르심과 상황을 맞아야 하는 제 삶의 새로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WCC 가족들로부터 받은 각양각색의 환대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따뜻한 환대는 저에게 많은 직무들을 시작하는 데 커다란 용기와 열정을 가져다 줬습니다.

연말에 새집에 이사하거나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는 등 삶의 여건이 바뀌는 경우 저는 새해 이브 때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읽으라고 하셨던 기도가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가 새해를 맞아 매년 읽었던 그 기도를 남편에게서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외할아버지는 노르웨이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의 농부였습니다. 그는 부모들에게 교리문답서를 읽어줬던 루터처럼 그렇게 가족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는 새롭고 복된 시간과 들의 곡식들, 나라의 평안, 교회 내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도는 보통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난해가 끝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난날을 돌아보고, 그리고 과거를 과거 되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세계와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한 새해와 새로운 십년을 시작하기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같이 각자의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 소망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는 그리스도의 빛인 에피파니의 빛이기도 합니다(2007년 루마니아의 시비우에서 열린 제3회 유럽에큐메니컬 총회의 주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을 통해 소망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로 옵니다. 해발 300m 아래의 저지대보다 더 낮은 그곳에서 최고로 높은 하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은 이 세상의 가장 깊은 곳,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지점에 와닿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산이 되고 세상을 발 아래 두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악함과 죄에서 변화되는 상징인 세례를 받으심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없이 하는 세례 의식이 필요없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죄스럽고 위선적이고 정의를 버린 인간과의 연합을 위해 기꺼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익사(溺死), 즉 죽음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세례는 그분이 갖가지 형편에 처한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부르심, 심지어 죽음 속에 처한 사람들과도 함께하겠다는 부르심의 요청인 것입니다. 시편 2편에서는 강력한 왕을 지칭할 때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을 인용해 지칭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재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운동은 바로 예수님의 세례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랑스런 우리의 구세주와 친구, 그리고 해방자요 평화의 왕이 되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비밀은 악의 비밀, 혹은 악의 유혹이나 행위에 대한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비밀은 사랑받으시는 그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사랑과 희망과 연합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함입니다. 믿음의 비밀은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를 통해 옵니다. 그러므로 사랑받으시는 분(예수)을 통해 시작된 우리의 운동은 이제 많은 사람을 사랑받게 하는 운동이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출발입니다. 우리가 악과 불공평,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죄와 싸우게 될 때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인지 서로 축복하고 기억나게 해줍시다. 우리의 삶은 사랑받으신 복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과거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빛으로 조명되고 미래의 모든 것 역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뤄지듯 말입니다.

몇 주 전에 저는 정당화의 원칙에 대한 연합 선포(the Joint Declaration i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10주년의 축하하는 자리에서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서로 공통 인식에 이른 에큐메니컬 운동의 많은 열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의 자유루터교회(LFC)에서 로마 가톨릭과 노르웨이 루터교, 노르웨이 감리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그로부터 한 주 후에 한 루터교 여성 신학자가 “예수님은 어디 계셨는가?”란 제목의 노르웨이 교회 신문 기사에서 제 설교를 비판한 것을 봤습니다. 주내용은 WCC의 새총무가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구속 등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가 이 비판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제가 맞대응 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 예배에서는 많은 중요한 문서들이 읽혀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기로는 거기의 많은 사람들이 정당화에 대한 기독교의 원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삶에서 정당화의 빛을 볼 수 있느냐를 전했습니다.

저는 그 칼럼의 비판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들은 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정하다고 느끼건 아니건 간에 비판적인 의견은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떠올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비판을 제 마음속에 간직해 뒀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설교와 생각, 계획과 행동에서 사라지실까요?

에피파니의 시간은 우리에게 선함과 사랑의 운동의 비밀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왔음을 가르쳐줍니다. 삶과 죽음, 예수님의 부활의 첫변화로서 예수님의 세례가 그렇듯 말입니다.

요단 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받은 곳엔 올리브 나무가 심겨져 있습니다. 2년 반 정도 된 것이라고 하는데,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사무엘 코비아는 평화를 위한 우리의 헌신을 뜻하는 올리브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가 여전히 그곳에서 자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코비아의 직무를 이었듯이 그 평화의 직무도 이어가라는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받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의 악에서 회심하는 일에 그분을 따르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온세계에 평화와 정의의 소망을 전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주십니다.

요단강 예수님 세례는 뭔가가 일어나야 하고, 그리고 위로부터의 변혁적인 말씀에 의해 이 세상 깊숙한 곳으로부터 뭔가가 솟아나야 한다고 우리를 충동하고 있습니다. 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있어 우리는 이 세상의 깊숙한 곳, 즉 고난과 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의 새로움을 외치는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음성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의 사랑받는 딸이다. 너는 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

2009년 1월11일 올라프 트비트 WCC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