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의장국 국운 가른다-(8) 문화의 힘을 키워라] 대중문화 ‘한류’만 성장… 갈길 먼 예술분야 경쟁력

입력 2010-01-11 22:03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유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지난해 수출 규모 세계 9위권 진입 등이 겹치면서 우리나라가 국운 상승의 기대감으로 들떠 있다. 외교·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의 품격을 좌우하고 21세기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문화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갈 길이 멀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콘텐츠 산업은 성장했지만 문화예술이나 출판산업 등은 경제력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문화의 힘을 키워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외형적인 성장, 내용면에서는 부실=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게임 영화 음악 출판 등 문화산업 매출액은 68조원으로 전년 대비 4.2% 성장했고, 수출액은 30억 달러(잠정)로 전년 대비 25.5% 성장했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수출액이 15억 달러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우리 문화산업의 규모는 게임이 세계 4위, 음악이 10위이고, 영화(11위) 출판(12위) 광고(12위) 등도 10위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예술 수준은 한 꺼풀만 벗겨보면 후진성이 드러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08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율은 문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오락성이 강한 영화 분야는 59%로 유럽연합(EU) 27개국 평균(51%)보다 높지만 박물관·미술관 관람은 12%로 유럽 27개국(42%)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도서관 이용도 13%로 EU 27개국(35%)의 3분의 1 수준이었고 음악·연극·무용 분야는 거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레크리에이션과 문화에 대한 투자도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OECD 팩트북 200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문화여가비 지출은 OECD 28개국 중 25위, 정부의 문화여가비 지출은 24개국 중 19위였다.

인구 10만명당 공공도서관 수(2008년 기준)도 한국은 1.3개로 폴란드(22.3개) 오스트리아(18.0) 핀란드(17.0) 이탈리아(10.7) 영국(7.5) 미국(5.6) 일본(2.4) 등과 비교해 크게 부족하다.

지식과 문화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출판산업도 기형적이다. 2007년 국내 출판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0.44%로 OECD 국가에서 상위권이다. 하지만 학습참고서 시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고, 인문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비중은 최하위권이다. 번역도서도 전체 출판종수의 30%, 시장규모의 약 50%를 차지하는 등 출판지식 콘텐츠의 대외 의존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문화의 브랜드가치 높여야=21세기는 문화가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문화적 자산은 국격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고부가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드라마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한류(韓流)’를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화해 문화콘텐츠 산업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1인 창조 기업’과 스토리텔링 사업 등에 대한 정책 지원을 확대하는 등 콘텐츠 산업 기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3년 세계 5대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진입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010년 한국방문의 해를 계기로 핵심 관광콘텐츠 개발, 숙박시설 등 관광인프라 개선을 통해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는 것도 문화경쟁력을 키우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과제다. 189개국 7000만명이 즐기는 태권도도 한국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자산이다. 태권도를 소재로 한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한편 2013년 문을 여는 무주태권도공원 등을 통해 세계 속에 태권도의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식의 세계화도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

황준석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시민국장은 “문화는 한 나라의 품격을 드러내는 지표일 뿐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기도 하다”며 “정부와 민간이 합심해 우리 문화의 힘을 키우려는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문화역량 강화해야=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전반적인 문화역량을 강화하는 게 문화강국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화는 산업적인 측면과 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라는 두 측면에서 함께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정숙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연극 미술 공연 무용 등 순수문화예술 분야는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제쳐두는 경향이 있다”면서 “문화예술 교육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높이려는 정책을 긴 안목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용진 서강대 교수도 “일반 국민들이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