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棋士,이창호 9단 잡다… 박정환 5단 ‘원익배 십단전’ 우승

입력 2010-01-11 18:34

17세 고교생 소년 기사가 이창호를 쓰러뜨렸다.

2009년 신예기사상을 수상한 고교생 기사 박정환 5단이 국내 랭킹 1위 이창호 9단에게 극적인 반집 역전승을 거두며 원익배 십단전 우승컵을 차지했다.

10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5기 원익배 십단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박 5단은 333수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이 9단을 꺾고 새해 첫 우승컵을 안았다. 이로써 박 5단은 종합전적 2대 1로 지난해에 이어 십단전 타이틀을 차지했다.

한국 바둑의 현재와 미래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번 결승전은 기대했던 대로 짜릿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7일 열렸던 1국에서 이 9단에 완패했던 박 5단은 9일 열린 2국에서 빠른 수읽기를 바탕으로 완승을 거두며 타이를 만들었다.

벼랑 끝에서 만난 최종 대국에서 박 5단은 흑 대마에 파상 공격을 펼치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나갔다. 이 9단은 위험해 보이던 대마를 수습하며 침착하게 따라붙어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막판 집중력에서 앞선 박 5단이 초읽기에 몰린 이 9단의 우변 실수를 파고들며 다시 미세한 승부로 몰고 나갔다.

반집 승부의 피 말리는 후반 패싸움에서 이 9단은 패감을 소진한 반면 박 5단은 한 패를 남겨둬 반집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날 대국은 이 9단이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는 타입’이었다면 박 5단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풀어주고는 다시 잡고, 또 다시 풀어주면서 상대방 숨통을 조여 가는 스타일’이었다.

박 5단은 우승 직후 “배우는 자세로 임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형세가 좋지 않았는데 이창호 사범님이 실수를 하셔서….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어 “승리해 기분은 좋지만 경기 내용이 나빠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 “유리한 경기를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해야 할 것 같다”며 나이답지 않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6일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김지석 6단에게 3대 0 완봉승을 거두며 생애 두 번째 본격 기전 타이틀을 차지했던 박 5단은 42일 만에 자신의 통산 세 번째 타이틀을 추가했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