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정전협정 당사국들에 ‘평화협정’ 회담 제의… “6자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입력 2010-01-11 22:26

북한이 11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개최하자고 공식 제의했다.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조선전쟁(6·25) 발발 60년이 되는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조속히 시작할 것을 정전협정 당사국들에 정중히 제의한다”고 밝혔다.

외무성 성명은 “위임에 따라” 이같이 제의했다고 밝혀 제안 주체가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방위원회나 통치권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임을 시사했다. 정전협정 당사국들을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체결국인 미국과 북한, 중국에 한국이 참여하는 ‘4자대화’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했을 당시 4자간 평화협정 논의 필요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명은 또 “조(북)·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조(북)·미 회담처럼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북핵 6자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북·미 양자대화와 4자간 평화협정 회담을 동시에 개최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명은 아울러 “제재라는 차별과 불신의 장벽이 제거되면 6자회담 자체도 곧 열리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북한이 6자회담 재개 전제조건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 개최를 제의한 것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동시에 끌고 가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2005년 7월에도 외무성 성명을 통해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해 9·19공동성명에 반영했고,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평화협정 카드를 꺼내든 것은 핵 문제를 지렛대로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종식시켜 후계체제를 위한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김 국방위원장이 본격적인 권력 이양을 앞두고 안보 불안을 해소해 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협상에 앞서 더 많은 보상을 따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재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 확보 등 일종의 ‘당근’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평화협정 문제 자체에는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지만 대북 제재 해제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양측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어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 개최를 놓고 북·미가 조만간 2차 양자대화를 열 가능성은 커 보인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이 열린다 해도 미국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해 논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즈워스 대표는 평양 방문 직후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논의에 추진력이 생기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 정부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 당국자는 “우리가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것은 분명하지만, 비핵화의 진전이 추동력을 얻을 때 평화체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