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못여는 홈플러스 갈산점의 딜레마… SSM ‘프랜차이즈’ 점포도 대기업-동네슈퍼 갈등

입력 2010-01-11 21:40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서 9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윤종성(41)씨.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매출이 떨어졌다. 업종전환을 고민하던 윤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주로 변신해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개입과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윤씨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홈플러스는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주가 260㎡(약 80평) 규모에 보증금 1억5000만원, 개점준비 비용 4800만원을 내면 나머지 점포 임차비용, 내·외장 공사, 판매장비 등은 모두 본사가 부담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적자가 나더라도 연 5400만원의 최저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윤씨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시험을 거쳐 지난달 10일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 8명도 채용했다. 같은 달 29일 개점일만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윤씨를 만나기 위해 인천을 찾은 11일. 매장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신문지와 박스가 뒤덮여 있었다. 인천 부평구 갈산2동 대동아파트 상가 앞은 연일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역상인 위협하는 SSM 물러나라’ ‘삼성테스코는 영국으로 돌아가라’는 피켓도 군데군데 붙어있다. 매장 앞 길가에서는 인근 상인들이 2평 남짓한 비닐 천막을 치고 24시간 보초를 서며 사람과 물품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홈플러스 1호 프랜차이즈 점포인 갈산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홈플러스는 동네 슈퍼마켓들의 반발로 SSM 진출이 어려워지자 지난달 지역 소상인이 가맹점주가 되어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운영하는 모델을 발표했다. 소상인들에게 점포 운영 시스템 및 노하우를 제공하고 최저수익까지 보장해주는 국내 최초의 슈퍼마켓 프랜차이즈였다. SSM을 둘러싼 대형마트와 지역상인 간 마찰을 최소화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홈플러스 측은 자신했다.

하지만 인근 지역상인들로 구성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저지 갈산동 대책위원회’는 개인 점주를 앞세운 사실상의 SSM 진출이라며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신청을 하고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민변의 법률자문서를 중기청에 제출했다.

한부영(56) 대책위원장은 “홈플러스가 점포임차비용 등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고 본사가 공급하거나 지정하지 않은 상품을 판매할 경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물품 구매와 판매, 광고, 대금결제 등 모든 사안에 대해 대기업의 통제를 받는 조건”이라며 “만일 정부가 가맹점을 사업조정대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전국 84곳에 내려진 SSM 사업조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홈플러스 측은 가맹점 형태의 소형 유통점은 독립적인 중소사업자이기 때문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시정지 권고의 적용대상이 되는 대기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SSM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기존 편의점과 비슷한 조건에서 운영되는 것”이라며 “만약 가맹점 형태의 소형 유통점이 사업조정대상에 포함된다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편의점도 모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맞섰다.

특히 중기청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 중기청은 지난해 8월 가맹점은 사업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지침을 내렸음에도 문제가 확산되자 ‘법리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 정부의 친서민정책을 감안, 동네슈퍼의 손을 들어주려 해도 홈플러스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경우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중기청이 SSM 가맹점을 사업조정 대상으로 판정할 경우 홈플러스뿐 아니라 GS수퍼 등이 추진하는 가맹점 사업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편의점은 물론 외식업 등 다양한 업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대형마트와 동네 상인들의 2라운드 싸움에 최대 피해자는 윤씨다. 윤씨는 “대형마트가 가진 영업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고 최저수익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로선 매력적인 투자”라며 “엄연히 개인사업자로 슈퍼를 열려고 하는데 홈플러스의 앞잡이쯤으로 생각하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미 뽑아놓은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들이 입점 교육을 다 마치고도 모두 집에서 놀고 있는 등 개점 지연으로 인해 입는 피해가 막대하다고도 했다. 윤씨는 지난 10일 대책위원회를 업무방해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인천=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