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2)] 털갈이는 표범처럼

입력 2010-01-11 21:35


니은 디귿 이응 그리고 이 아 으…. 한글 자모를 뒤섞어 놓은 듯한 그림, 도대체 무엇인가. 돋보기를 대고 보면 자세하다. 자모 사이사이에 잔털이 촘촘하다. 아랫부분에 마주보는 기역 자는 눈썹이고, 밑에 둥그스름한 부분은 눈자위다.



맞다, 표범이다. 표범이긴 한데 껍질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의 이 그림 참 대단하다.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한 북한의 국보다. 터럭 한 올 한 올 다 그리려고 만 번이 넘는 잔 붓질을 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보꾹 그림을 그리다 등이 활처럼 굽었다. 짐작컨대 단원은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을 테다.



그 고역을 치르며 표범 가죽을 구태여 그린 이유가 뭘까. 가죽은 한자로 ‘혁(革)’이다. ‘혁’은 또 고치고 바꾼다는 뜻이다. 표범은 철따라 털갈이한다. 무늬가 크고 뚜렷해진다. ‘군자표변’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군자는 표범이 털갈이하듯 선명하게 변한다. 선비인들 다르랴. 사흘만 안 봐도 눈 비비고 볼 상대로 바뀐다. 그것이 ‘괄목상대’다.



새해가 되면 다들 마음먹이를 다시 한다. 해도 군자나 선비가 못 되는 이는 ‘작심삼일’이다. 단원은 오종종한 인간을 꾸짖는다. 인두겁을 써도 표범 가죽 쓴 듯 행세하라.

손철주(미술 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