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아바타 vs 위대한 침묵
입력 2010-01-11 18:09
영상은 불사조인가. 인류는 활동사진을 발명한 이후 곧장 소리를 더했고, 화면이 지루할 때쯤 컬러를 입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3D라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아바타’를 말하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힘도 여전하다. 현란한 화면이 아닌 절제된 미학, 진지한 내러티브의 힘으로 관객을 감동시킨다. ‘위대한 침묵’ 이야기다.
‘아바타’는 주말에 800만명을 돌파해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만의 쏠림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타이타닉’을 만든 흥행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2년의 준비 끝에 내놓은 회심의 역작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앞으로 세계 영화사의 여러 기록을 갈아 치울 것 같다.
영화는 자원을 빼앗으려는 인간과 순수한 영혼을 가진 외계인의 대결이다. 여기에 인간의 생체 회로를 연결한 아바타가 만들어져 활동한다. 산이 공중에 떠있고, 인간이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는, 허황된 스토리텔링이지만 입체 영상의 화려한 테크닉에 압도된다.
그렇다고 3D 영상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을 일도 아니다. 입체 안경을 쓰고 2시간 반 동안 고정된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고역이다. 눈은 극도로 피로했다. 과도한 카메라 워크는 고소공포증이나 두통을 유발시켰다. 나중에는 3D가 안방의 TV에도 침투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테면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드라마에는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아날로그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 역시 2시간 반이 넘는 대작이지만 이례적으로 5만 관객이 함께했다. 각종 국제영화제 초청도 잇따르고 있다. 해발 1300m 알프스 산중, 우리로 치면 치악산 정상에 자리 잡은 카르투지오 남자 수도원의 일상을 기도하듯 섬세하게 잡아내고 있다.
영화를 만든 필리프 그로닝 감독은 15년 만에 촬영허락을 받아내 2년 6개월 동안 카메라에 담았다. 다만 수도원측이 내건 까다로운 조건을 지키다 보니 영화는 지독하게 재미없다. 인공조명 아닌 자연광선만 쓸 것, 일체의 음향을 사용하지 말 것, 감독 1명이 촬영을 겸할 것…. 한마디로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로닝은 입회식, 삭발, 요리, 양치기, 설거지. 장작패기, 기도, 종소리, 포옹, 찬양 등으로 이어지는 수도승들의 경건한 삶을 시편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바스락바스락 나초 찍어 먹기가 민망해 바닥에 내려놓아야 할 정도였다.
‘아바타’가 화끈하면서도 뒤끝이 개운치 않은 열탕이었다면, ‘위대한 침묵’은 차가우면서도 머리를 맑게 만드는 냉탕이었다고나 할까.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