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에서 보는 정치·사회의 후진성

입력 2010-01-11 18:01

정부가 어제 세종시를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정운찬 총리가 지난해 9·3개각 때 세종시 원안 수정 방침을 밝힌 이후 4개월여 만이다. 3000명이 넘는 국내외 과학자를 수용할 기초과학연구원, 특수목적고와 고려대 KAIST, 삼성과 한화 롯데, 국립수목원 등 세종시에 들어설 면면을 보면 과학기술과 교육 문화가 어우러진 미래형 첨단도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수정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입법절차가 국회에서 완료되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해온 야당이 즉각 장내외 투쟁에 나서고 총리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하는 등 결사 항전의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수정안에 대해서는 ‘알맹이 빠진 껍데기’ ‘국민 상대로 한 사기극’ ‘재벌특혜 도시안’이라고 깎아내렸다. 한나라당이 친이계와 친박계로 양분돼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도 난제다.

정부 역시 물러설 수 없는 처지다. 수정안을 관철하지 못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에 허덕일 가능성이 있고, 정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 대통령과 총리, 야당, 박근혜 전 대표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큰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와 야당의 전략 또한 유사하다. 민심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오늘 시·도지사들과 만나고 조만간 기자회견을 하려는 것이나, 야당 지도부가 충청권은 물론 세종시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여기는 혁신도시를 방문하려는 목적은 똑같다. 여론을 잡기 위해서다. 상대와 만나 이성적으로 토론하거나, 소통하려는 노력은 어느 쪽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국가적 대사를 원만히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갈기갈기 찢겨진 현실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의 후진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는 6월까지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소지가 크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만이 이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충청 주민들 의사가 중요하다. 충청인들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수정안을 면밀히 들여다본 뒤 수용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