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5세 노인들,빨래방 사업 뭉쳤다… 양평 용문교회 사랑나눔
입력 2010-01-11 20:43
“세탁한 이불을 가져갔더니 자기 것이 아니래요. 세탁물 꼬리표를 반드시 달아 바뀔 일이 없거든요. 알고 봤더니 너무 뽀송뽀송해서 자기 세탁물을 못 알아본 거더라고요.”
경기도 양평 용문교회(이언구 목사)의 정문식 장로가 빨래를 잘 한다고 자랑한다. 정 장로는 올해 71세로 원로다.
70세 이덕우 장로가 덧붙인다. “세탁하고 더러우면 다시 세탁해요. 실밥이 뜯어지면 일일이 수선하기도 하지요.”
평균 나이 75세 노인들이 세탁 봉사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노인 30여명은 지난해 5월부터 교회 인근 지역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의 이불 빨래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10명씩 조를 짜 매주 3회 이불을 직접 수거하고 세탁한 뒤 배달해 준다. 용문교회는 이를 위해 아예 별도 건물을 짓고 대형 세탁기 등 시설을 마련했다.
‘용문교회 사랑나눔 빨래방’ 창업 주역은 앞의 두 장로다. “교통편 때문에 노인들은 아프면 무조건 내과만 가요. 그래서 교회차로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방 안을 보니 이불이 너무 더러운 거예요. 마침 정 장로님이 세탁소를 했던 터라 말씀을 드렸죠.”(이 장로)
“말난 김에 교회에도 얘기하고 군에도 얘기해서 아예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만들었어요. 김선교 군수가 차량도 지원해줬고요. 서로 박자가 잘 맞아 감사하죠.”(정 장로)
처음에는 인근 5개 면의 120가정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빨래를 해준다고 해도 내놓지 않는 통에 애를 먹었다. 수치심이 이유였다. 자녀들에게 욕될까봐, 이불 갖고 도망갈까봐 걱정도 했다. 그래서 20여분 동안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시골에 소문은 금세 퍼졌고, 요청이 폭주했다. 지난 연말까지 이불을 한번 이상 세탁해준 가정이 330여곳이다. 이 장로는 “여기까지 오는데 엄청 힘들었다. 이제야 집에 가서 바로 이불을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세탁에 참여 중인 노인들은 오히려 혜택을 본다고 했다.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제일 연로하신 장로님이 82세예요. 옷 수거할 때 따라다니시는데 얼마나 행복해 하시는지 몰라요. 노인들은 할 일이 있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또 아침 8시에 모이는데 모두 30분 전에 나와 준비하세요.”(정 장로)
안타까운 가정도 많이 만났다. 중풍 앓은 지 5년 된 환자는 가스레인지와 쌀, 반찬 등을 손닿는 곳에 놓고 혼자 밥만 해먹었다. 얼마 전 83세로 세상을 떠난 한 노인은 빨래보다 얘기 좀 하자며 손을 끌었다. 정 장로는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혹한기인 요즘 빨래방은 노인들의 건강을 고려해 잠시 쉬고 있다. 그러나 언제 다시 나가야 되느냐는 문의 전화가 매일 걸려온단다.
용문교회는 빨래방 외에도 지역을 위한 사역에 열심이다. 노인대학인 ‘은빛대학’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나눔봉사대, 교회터의 시골 장 등을 통해 지역민을 섬긴다. 이언구 담임목사는 “105년 역사를 지닌 교회는 이를 통해 최근 장년 출석 800여명으로 부흥했다”고 밝혔다.
양평=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