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그물을 던진다] 예동교회 신건일 목사의 목회철학
입력 2010-01-11 17:43
“남을 위해 축복할 수 있다면 행복”
“목회자이신 아버지는 교회에 어려움을 줘서는 안 된다며 매년 1월 사례비를 교회에 헌금하셨습니다. 우리 3형제는 어려운 형편에도 설교 말씀대로 사시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봤고 하나님께서 큰 복을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처럼 주일 설교말씀에서 제가 지키지 못할 것은 삭제하고 매년 1월 사례비는 어김없이 내놓습니다. 개척교회 시절이나 지금이나 교회에 어려움을 주고 싶지 않아 이래저래 들어가는 돈은 사비로 내놓습니다.”
신건일(48·사진) 목사는 교회 중심의 삶을 사는 전형적인 2세대 목회자다. 신일웅 대구제일성결교회 원로목사의 차남인 신 목사는 27세이던 1988년 대구 신당동에 와보라교회를 개척했다. 남들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던 부친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고 상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공군 방위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총각 시절 두 가정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나면 어느 권사님 한 분이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부대에 출근했습니다. 오후 6시 퇴근하면 교회 일을 했고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5년 만에 1억2000만원의 교회 재정을 모았어요. 사례비는 받지도 않았고요. 아버님은 예배 중심의 삶, 철저한 십일조 생활, 돈 조심, 여자 조심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목회 코치로서 큰 도움을 주셨죠. 물론 재정 지원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계명대와 서울신대를 졸업한 신 목사는 93년 어렵게 개척한 교회를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 탈봇신학교를 졸업하고 리버티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97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7군데의 교회에서 와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서원기도대로 ‘처음 청빙 요청이 온 교회’로 향했다. 경주교회였는데 30명 교인에 빚만 2억3000만원이 있었다.
“2년 만에 성도가 4배로 불어나니 어쩔 수 없이 교회를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그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서 교회 벽돌을 올렸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재산도 다 내놨죠. 하나님께 드리는 게 기쁨이었습니다. 불교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거리에서 활발하게 전도했습니다. 누군가 교회 마당에 붉은색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한 번만 더 전도하면 교회 불태운다’는 협박성 글을 쓰기도 했지만 큰 부흥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예동교회는 2001년 부임했다. 그가 추구하는 목회 방향은 조용하면서도 순수한 ‘섬김’이다. “하나님을 위해 울 수 있다는 것, 남을 위해 축복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물론 목회하다 보면 억울하고 힘든 일도 많습니다. 오해받는 일을 겪을 땐 가서 따지고 싶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가 진실 되게 행동했다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밝혀진다’는 것이죠. 참 그 말이 맞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상처가 있어요.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섬길 때 권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섬기다 보면 존경심은 자연스레 가슴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진정한 목회자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목회가 재미있습니다.”
부산=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