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G20 금리’
입력 2010-01-10 19:55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통화의 양과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을 통화신용정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맡고 있고, 7인으로 구성된 금융통화위원회는 한은의 최고 정책결정 기구다.
통화발권력을 위임받은 중앙은행의 최우선 가치는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거나 특정 집단·세력에 치우치는 통화정책 운용이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1970년대 일부 남미 국가의 초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목적에 종속될 때 나타나는 심각한 폐해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들이다.
한은법은 통화정책의 중립성은 핵심 가치로 규정돼 있다. 제3조는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해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돼 있다. 한 조항에 자율성, 중립성, 자주성이라는 단어가 강조된 것은 이례적이다. 금통위원들이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 중 각계의 추천을 받아 구성되는 것도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한은 금통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시장금리의 기준이 되는 정책금리 수준을 매달 결정하는 것이다. 금통위가 결정한 기준금리에 따라 콜금리로 불리는 초단기금리, 단기·장기금리 등 각종 시장금리가 변하며 이는 경기와 물가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금통위의 자율성이 흔들리는 징후가 거듭되고 있다. 금통위 회의 직전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 관료가 기준금리 결정 방향을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비상시라는 이유로 용인됐던 ‘비정상’이 위기가 종료된 뒤에도 계속되며 새로운 관행으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 정례화도 금통위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비상조치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관련, ‘G20 금리’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G20 의장국으로 이 행사 성공에 정부가 올인한 만큼 금통위 동향과 상관없이 상반기까지 기준금리는 동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미라 한다. G20 회의와 출구전략 연계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춰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통화정책도 경제정책의 일부인 만큼 정부와의 협의, 공조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G20 금리’가 상징하는 것은 이미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정책 당국의 목소리가 금통위를 대신하는 일그러진 현실이다.
배병우 차장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