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의장국 국운 가른다-(7) 사회의 격을 높여라] 국민 신뢰 잃은 ‘사회 지도층’ 뼈깎는 자성 아쉽다

입력 2010-01-10 19:07


올해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는 정치·외교·경제적으로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1월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즉 우리 사회의 격은 어떠한가. 사회통합, 투명성과 신뢰성, 사회질서, 사회적 약자 배려 등 사회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각계 전문가와 원로들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대한민국 경제의 격을 높였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시민문화의 격을 높였다면 G20 정상회의는 경제성장에 맞도록 사회의 격을 높일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통합과 신뢰성의 회복=지난해 우리 사회의 사회통합과 신뢰성은 큰 상처를 받았다. 국무총리와 장관 등 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와 병역특혜 의혹 등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정치권은 미디어법과 예산안 등을 놓고 격한 몸싸움으로 한 해를 보냈다. 갈등을 조절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이 스스로 사회통합을 해치고 불신을 양산한 셈이다.

사회 지도층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사회의 격은 높아지기 어렵다. 정부가 올해 공직자의 병역 정보 대상과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위로부터 무너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인 강지원 전 청소년보호위원장은 8일 “우리 사회의 이기적인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부정부패, 사회갈등, 인간성 파멸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정치권부터 욕망을 자제하고 신뢰를 되찾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신뢰성을 갖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선진국은 인터넷을 활용한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인터넷 단문 블로그 서비스 ‘트위터’를 통해 국민들과 중요한 국정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 웹사이트를 개설해 정보를 공개하고 정책에 관한 시민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은 “외국 지방정부들은 어린이집의 운영이나 식당 위생 상태 등을 꼼꼼히 평가해 실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며 “정부와 국민이 실생활에서 소통하면서 정책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질서와 합리적 의사결정=우리나라의 법질서 의식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07년 연구 결과 법질서 준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27위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사회적 자본지수에서는 사회규범지수가 10점 만점에 5.19점으로 OECD 29개국 가운데 24위였다.

정부는 G20 정상회의 이전에 법질서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법질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캠페인이나 강력한 법적 처벌을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 세우기는 일시적이고, 성과주의에 매몰될 우려가 크다. 법질서가 튼튼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법이나 규범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사회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자발적 질서문화도 아쉽다. 서울 등 중부지방을 강타한 1·4 폭설 당시 도로가 막히자 참지 못한 운전자들끼리 몸싸움을 벌였다. 눈이 그친 뒤 내 집 앞에 쌓인 눈치우기를 두고 이웃 주민끼리 폭력을 행사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세대 철학과 김형철 교수는 “회사에서 어떤 규칙을 정한다면 회사 구성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돼야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규칙도 잘 지켜진다”며 “무엇을 지킬지보다 어떻게 지킬지를 중시하고 여론을 잘 수렴하는 게 선진사회”라고 말했다.

◇나눔과 관용, 사회적 책임=사회적 약자를 위해 책임을 강화하는 일도 과제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통합 분야 발전지표는 2007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 26위였다. 복지·분배(30위), 사회·정치적 자유(25위), 관용(23위) 등이 낮았기 때문이다,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을 줄이고, 경제적 능력에 따른 교육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여성, 다문화 가정 등을 포용하는 것도 사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사회적 책임은 우리 사회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오는 10월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SR 26000)’을 도입할 예정이다. 인권, 노동, 여성, 공정거래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준수 여부를 인증하자는 취지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SR 26000이 도입되면 2020년까지 관련 국내 서비스 산업 규모만 7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사회통합위원회가 전담반을 만들어 사회적 책임에 관한 법령을 정비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