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니그로?” 벌집 쑤신 美인구센서스… 설문에 인종 비하 표현 흑인 사회 “참 나쁜 말” 부글부글

입력 2010-01-10 18:51

미국에서 ‘니그로(Negro)’란 단어와 논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10년마다 이뤄지는 인구조사(2010년)를 실시하면서 니그로란 표현을 사용해 흑인 사회가 발끈했다. 게다가 연방 상원의 해리 리드(네바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2008년 대통령선거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를 묘사하며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니그로는 흑인 인종을 뜻한다. 미국에선 흑인노예시대 때 흑인을 비하했던 부정적 의미가 강해 인종차별적 단어로 간주돼 왔다. 이에 따라 1960년대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블랙(Black)’이나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 American)’이 통용되고 있다.

인구조사국은 설문지 9번 문항 ‘당신의 인종은 무엇인가’에서 ‘Black, African Am. or Negro’(흑인, 아프리칸 아메리칸 혹은 니그로)라는 답변을 예시했다. 더구나 이 내용은 지난해 의회 승인까지 받아 각 가구에 배포되고 있다.

흑인 사회에서는 상당한 불쾌감이 표출되고 있다. CBS 방송은 “수십년간 쓰이지 않았던 단어가 다시 나왔다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하다”는 인터뷰 내용과 함께 흑인 사회가 발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NPR(공영라디오방송)도 “무지 화가 난다” “니그로는 참으로 나쁜 말”이라는 반응을 전했다.

흑인 사회가 들고 일어나자 인구조사국은 나이든 흑인들 중 스스로를 니그로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노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실제로 과거 조사에서 일부 설문자들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는 선택사항이 있었으나 어떤 인종을 뜻하는 것인지 몰라 니그로라고 써넣었던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리드 원내대표는 2008년 경선 당시 한자리에서 오바마 후보를 지칭하면서 “밝은색 피부(light skinned)에다 니그로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9일 공개된 ‘게임 체인지(Game Change)’라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언론인의 저서를 통해서다. 지역구 흑인 사회의 반발 움직임에 리드 원내대표는 바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그토록 형편없는 단어를 사용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대선기간 오바마 후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고 자세를 낮췄다. 오바마 대통령도 “리드 의원이 전화로 사과해 왔다”며 “그가 사회정의에 대해 보여 온 열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감쌌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