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세 완연한 소비… 성장 가로막는 3高

입력 2010-01-11 01:09

경기에 민감한 내구재 소비가 늘어나는 등 실물경기 회복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내수 진작에서 벗어나 민간의 자생력이 복원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원화값, 유가, 금리 등 ‘3고(高)’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곳곳에 불확실성 요인이 잠복해 있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민간 소비가 살아났는데…=경기가 좋아지면서 목돈이 들어가는 내구재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식주 위주의 생계형 소비에 머물던 민간 소비가 제법 돈이 드는 내구재 소비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가계소득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소매판매액은 22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2%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7월 12.7%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특히 자동차와 가구 등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내구재 판매액은 지난해 11월 전년 같은 달보다 46.9% 급증해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소매 판매액은 지난해 5월 이후 7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2008년 11월 금융위기 여파로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지난해 5월 전년 동월 대비 1.8% 증가, 플러스로 반전한 뒤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했다. 특히 내구재 중 경기침체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승용차 판매액은 지난해 11월에 전년 동월 대비 111.5% 늘었다. 가전제품 판매액도 12.7% 상승해 2008년 7월 18.7% 이후 최대를 기록했으며, 컴퓨터 및 통신기기 판매액은 4.5% 증가해 2008년 4월(6.2%) 이후 가장 컸다.

자동차 판매 증가는 노후차 교체에 대한 세제혜택 효과를 본 측면이 있지만 이를 제외한 내구재 판매는 소비자들이 그동안의 내핍생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준내구재인 의복과 신발·가방, 오락·취미 및 경기용품 판매도 늘었다. 여가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비내구재에 해당하는 음식료품, 의약품, 화장품, 서적·문구 판매액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전년 동월 대비 4.3% 늘면서 2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으며 다만 유가 하락 여파로 차량 연료 판매액만 2.3% 줄었다.

이처럼 지난해 말 뚜렷해진 소비 회복세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지난해 0.4%에서 올해는 4%대 초반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에 소비가 워낙 저조해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높아질 수 있는 데다 각종 실물지표도 개선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경제지표에 반영됐던 정부의 경기부양정책 효과가 사라지고 유가 상승이 소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비지표가 차츰 나아지긴 하겠지만 기저효과를 뺄 때 실제 증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3고(高) 위협에 한국 경제 낙관 못해=새해 들어 환율, 유가, 금리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원화 값과 유가가 급등하고, 금리도 오를 조짐을 보이면서 이들 변수가 올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내수가 취약한 상황에서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아 성장률을 깎아내릴 수 있고, 고유가와 고금리는 물가 상승 및 금융비용 증가로 연결되면서 기업과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순까지 120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5일 연속 하락하며 1130원 선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환율 하락은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켜 경제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금리 인상이 겹칠 경우 기업들은 이중고에 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10% 하락이 경제성장률을 1.13% 포인트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다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마저 10% 상승할 경우 성장률이 1.52% 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유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지난달 초순만 해도 배럴당 70달러 안팎이던 유가가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6일까지 줄곧 오름세를 타 한때 83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당장 물가 상승 압박에 직면한다. 물론 환율 하락이 유가 상승분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만 국제수지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10일 “90달러 이상 올라가면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면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리인상 압력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경기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고 있지만 시중금리는 임박한 금리 인상을 선반영해 추세적으로 상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1일 연 4.05%까지 내렸다가 지난 4일 4.44%로 단기 고점을 형성한 뒤 지난 8일에는 4.36%를 기록했다.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달 15일까지 약 2개월간 2.79%를 유지했으나 지난달 16일부터 다시 상승해 지난 8일에는 2.88%를 나타냈다.

일부 은행이 신규 주택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시중금리는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에 빚을 진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져 소비회복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재중 김아진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