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존엄사 논란 김할머니 별세] 예상과 달리 자발호흡으로 장기 생존

입력 2010-01-10 18:28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508호에서 홀로 숨쉬던 김모(78)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202일 만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식물인간 판정, 연명치료를 놓고 벌어진 법적 다툼, 200일이 넘는 생존 등 김 할머니의 ‘투병 693일’은 뜨거운 존엄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는 장기생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존엄사의 경계가 어디인지 논란도 일었다. 할머니는 숨을 거뒀지만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식물인간 판정과 인공호흡기 제거=2008년 2월 18일 김 할머니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 여부를 확인하는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뇌손상을 입었다. 병원 측은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게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했고 연명치료에 들어갔다. 가족은 기계 장치로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이 김 할머니의 평소 유지라며 같은 해 5월 9일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병원 측은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며 인공호흡기 제거에 반대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법적 다툼 끝에 가족들은 지난해 5월 21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존엄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치의인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박무석 교수는 그해 6월 23일 오전 10시21분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냈다. 호흡기를 부착한 지 492일 만이었다. 가족들은 “천국에서 행복하라”며 임종 예배까지 드렸다. 할머니가 곧 사망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호흡기제거=존엄사’라는 등식은 할머니가 자가호흡을 이어가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는 스스로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갔다. 지난 10월까지도 김 할머니의 산소포화도, 맥박, 호흡, 혈압 등 모든 건강 수치는 안정적이었다. 폐렴이나 욕창 같은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에도 코에 연결된 호스로 유동식을 공급했다. 가래 제거, 욕창 예방 등 내과적 치료를 이어갔다. 이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제외한 나머지 연명치료가 계속되는 김 할머니 경우를 ‘존엄사’로 규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별세=김 할머니의 건강은 생일인 10월 14일 이후부터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 없이 자가호흡을 하다 10월 22일부터 산소공급튜브에 의존했다. 산소포화도가 위험 수준인 90% 아래로 떨어지면서 튜브로 분당 평균 1∼2ℓ 정도의 산소를 공급받았다. 인공호흡기처럼 기도에 삽관하진 않지만 산소튜브라는 외부 장치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당시 병원 측은 “현재는 호흡과 맥박 등 건강 수치가 안정적이지만 산소 튜브를 제거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산소공급튜브를 달기 전에도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산소마스크를 쓴 적이 있었다.

투병이 장기화되자 욕창과 부종 등 합병증이 심해졌다. 가족들에 따르면 지난 11월에는 침대 패드가 다 젖을 정도로 등에 심한 욕창이 생겼다. 오른손이 심하게 붓는 부종 증상이 나타나 치료를 받았다.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만 제거했을 뿐 사실상의 연명치료”라며 김 할머니를 ‘존엄사 환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월 31일부터 김 할머니는 소변량이 급감하는 등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콩팥 기능이 떨어졌고 폐에 물이 차는 등 증세가 악화됐다. 10일 오전에는 산소포화도가 급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김 할머니가 낮부터 호흡이 불규칙해지는 등 상태가 안 좋아졌다”며 “직접 사인은 폐부종 등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밝혔다.

임성수 김경택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