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도 투쟁방향도 현장서 나오지요” 40여년 노동운동 정리 ‘외줄타기’ 펴낸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
입력 2010-01-10 19:18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조가 안고 해결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차별 등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려면 안 되고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노동계에서 ‘영원한 위원장’으로 통하는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자신의 노동운동 40여년을 정리한 책 ‘외줄타기’를 최근 펴냈다. 이 책은 현재 위기국면에 있는 노동운동이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곳곳에 담고 있다. 현재 국제노동협력원 운영위원장인 박 위원장을 지난 8일 서울 신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우선 42년 전 한국조선공사 노조 간부 시절 ‘임시공’(지금의 비정규직) 1170명에 대한 해고예고통보를 사용자 측이 철회하도록 양보를 이끌어낸 경험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노조 청년부장이던 1968년에도 조선공사는 ‘본공’인 정규직보다 임시공이 더 많았다. 당시 조선공사 노조의 전략은 ‘본공과 임시공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었다. “임시공이 잘렸는데, 본공이 들고 일어섰어요. 성난 파도가 도크를 메웠죠. 파업이 시작된 겁니다.”
박 위원장은 “본공들은 후배들을 위해 작은 양보에 인색하지 않았고, 임시공들은 본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 힘이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물론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과거에 기업들은 노동조합이 거칠게 나오면 정권에 기댈 줄만 알았기 때문에 노무관리는 허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들도 세련돼 있기 때문에 노조활동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69년 조선공사 노조의 파업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이후 박 위원장은 잠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박 위원장은 이때부터 지역별 노조인 금속노조직할 영도철공분회 사무장을 맡으면서 조직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1년 만에 200명 수준이던 조합원을 500명으로 늘렸다. 노조의 서비스는 해고수당과 퇴직금을 대신 받아주는 등 주로 근로기준법을 지키도록 하는 데 집중됐다.
박 위원장은 노동운동을 하는 동안 세 가지 원칙을 정해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정정당당한 싸움은 끝까지 지원합니다. 부당노동행위가 일어난 현장에는 조직을 보냅니다. 현장중심주의, 즉 조합원과 유리된 노조는 개선시킵니다.” 그는 “금속노련 위원장 8년 경험의 결론은 정책도 투쟁방향도 역시 현장에서 나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련 위원장 시절 노조 사무실에서 바둑판을 몰아내고, 룸살롱 출입을 금지시킨 사례도 소개했다. 박 위원장은 “사람이란 얻어먹은 만큼 토해내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내가 파렴치범이 됐더라면 이런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한국노총 위원장 시절 민주노총과의 연대파업을 성사시켜 96∼97년 노동계 총파업을 이끌어 냈다. 그 후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노동운동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임항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