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정완] 영화 ‘아바타’를 보고

입력 2010-01-10 18:10


가상세계는 가짜일 뿐 그 분 계신 현실 바로 보자

지금부터 150년후 에너지 고갈로 고민하던 지구인들이 행성 판도라에 엄청난 자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토착 원주민 나비족이 산다. 우선 그들을 알고 설득하기 위해 그레이스 박사 팀은 사람의 의식을 나비족의 외형에 주입한 아바타(분신)를 개발한다.

하반신 장애를 겪고 있던 제이크가 나비족 아바타가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다. 제이크는 결국 나비족 전사의 편에서 지구인들의 공격에 대항한다. 이것이 영화의 큰 줄거리다. 아바타는 분명 놀라운 영화다.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등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은 윤리적인 단단한 틀 속에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절묘하게 다듬었다. 3D 방식도 강력한 이야기 전달 장치로 활용했다. 영화는 흥행가도를 달린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이 영화의 흥행은 우리가 이미 가상의 삶에 익숙하고, 동경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반신 장애를 겪고 있는 주인공 제이크는 가상 공간이 아닌 실제 속에서도 영웅이 된다. 또 현실보다 아바타로 사는 것을 즐긴다. 자신이 동경하던 아바타의 정체성이 실제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아바타는 새로운 형태의 가면이다. 그 가면은 그동안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했던 가능성을 드러내도록 돕는다. 영화에서 제이크는 실제의 제이크는 사라자고, 주술적인 행위로 더 이상 아바타도 아닌 ‘아바타-제이크’가 된다.

우리의 삶은 절대로 아바타와 ‘실제의 나’가 통합될 수 없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이와 유사한 행위에 빠져 산다. 그리고 가상세계의 아바타를 현실로 데려오고 싶은 욕망, 그리고 데려온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이들의 도발적 행동이나 영화나 영상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폭력과 성 탐닉에 빠지는 것은 그런 일단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것처럼 ‘만들어진 하나님’이 있거나, 아바타에 나오는 주술적 종교처럼 그 세상을 정당화시켜주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나 신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모두 가짜일 뿐이다.

신앙은 인간이 제한된 피조물적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상 세계로 들어가면 우리는 한계 없이 엄청난 존재로 바뀐다. 그 가상 세계는 현실의 자신을 잊고 거짓이지만 근사한 존재로 살도록 아바타라는 가면을 건네준다. 영화 아바타는 이 같은 가정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 문제가 있으면 있을수록, 현재를 사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아바타로 살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진다. 많은 이들이 가상 세계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실제 삶의 구세주를 소개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영화는 곧 현실이 될지도 모르니까.

하정완 목사 꿈이있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