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마다 가족 향한 父情 고스란히… 작고 사진작가 전몽각 사진집 ‘윤미네 집’ 20년 만에 복간

입력 2010-01-08 18:19


태어나서 시집갈 때까지 26년 동안(1964∼89년) 큰딸 윤미의 모습을 기록한 아마추어 사진작가 전몽각(2006년 작고)씨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90년 초판본 1000부가 출간된 후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헌책방을 뒤지거나 사진 동호회 게시판을 통해 책을 수소문하는 글을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성균관대 부총장을 지낸 작가의 사진에는 렌즈 너머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부정(父情)이 배어 있다. “왜 장가 못 가느냐고 주변에서 핀잔 받던 내가 어느 사이엔가 1녀 2남의 어엿한 가장이 됐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고 그것도 부족하면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그야말로 인간 본래의 감성대로 키웠다. 집에만 돌아오면 카메라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한 청년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출가시키고, 손자 손녀를 맞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생을 마감하는 삶의 흔적이 오롯이 담겼다.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나누어 먹고, 좁은 방 한 칸에서 모로 누워 잠을 청하고, 때로는 지친 표정까지 카메라에 담았으나 윤미네 집에는 늘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지상에 방 한 칸이었어도 가족이 있어 참으로 따뜻했던 세월 저편의 향기가 흑백사진에 가득 묻어난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한 가정의 추억이 빼곡히 박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뿐 아니라 서울이 발전하는 풍경까지 함께 관찰할 수 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윤미네 집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한국의 현대사와 그 궤적을 나란히 하는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사진집이 20년 만에 복간됐다. 초판본에 실렸던 사진과 함께 전씨가 숨지기 전 정리했던 미공개 ‘마이 와이프’ 사진과 원고가 덧붙여졌다. 5권의 파일에 꼼꼼하게 정리된 아내 사진은 췌장암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암실에서 직접 작업한 것이다. 대학 3학년 때 만나 40년 넘게 동고동락해온 아내와의 사별을 앞둔 남편의 글과 사진이 절절하다.

부인 이문강씨는 “남편이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것을 묻어 둘 수 없다는 생각이 항상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복간 사진집에 붙여 넣었다”면서 “‘윤미네 집’은 남편의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와 함께 바라보던 숲을 향한 창가에서 낙엽이 우수수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남편과 다투던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