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도 않고 집안에서 TV 시청·홈쇼핑·메신저… 따뜻한 곳만 찾는 ‘한파 너구리族’ 는다

입력 2010-01-08 23:46


올 들어 사상 최악의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면서 따뜻한 집을 떠나지 않거나, 집을 나서더라도 따뜻한 곳만 찾아다니는 ‘너구리족’이 늘고 있다. 너구리족의 생활환경에 맞는 홈쇼핑, 배달음식 매출은 고공 행진 중이다. 반면 추운 재래시장, 공원 등은 인적이 없어 찬 바람이 더욱 매섭다. 지난달부터 8일까지 서울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날이 12일. 1986년 같은 기간 15일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될 정도의 한파가 사람들의 생활과 소비 패턴을 바꾼 것이다.



정모(30·여)씨는 지난 4일 폭설이 내린 후 집과 회사만 이동하며 동선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정씨는 “집에서 특별히 할 것도 없다보니 TV를 보거나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 요즘엔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한파로 명암이 갈리고 있다. 홈쇼핑 업계는 한파·폭설이 본격화된 4~7일 매출액이 지난주 동기(지난달 28~31일) 대비 GS홈쇼핑 32%, 현대홈쇼핑 12%, CJ오쇼핑 4.8% 등 고루 상승했다. 반면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울상이다. 홈쇼핑의 매출이 뛰어오른 사이 같은 기간 이마트의 매출액은 25븒, 롯데백화점 15%, 신세계백화점 14.3븒, 롯데마트는 14븒 하락했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곳에서 약속을 잡는 사람들로 인해 종합쇼핑몰은 오히려 붐볐다. 8일 영등포동 타임스퀘어에서 친구를 만난 이상임(60·여)씨는 “영화와 식사 쇼핑을 한 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추운 거리에 나가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날 서울 남대문시장에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고, 일부 상점들은 아예 불을 꺼놓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윤모(55·여)씨는 “지난 4일 이후 평소의 반도 못 팔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원 역시 한가했다. 매년 겨울 2000~3000명씩 찾아오던 훈정동 종묘공원에는 이날 노인 200여명만이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옮겨 다니고 있었다. 1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이 공원에 나오는 오춘일(67)씨는 “챙겨주는 가족 없는 나 같은 사람 정도만 날씨에도 상관없이 꿋꿋이 공원에 나온다”고 말했다.

배달 서비스 유무에 따라 요식업계의 희비도 엇갈렸다. 배달 고객이 많은 화양동 L중국집의 김모(47) 사장은 “갖고 있는 오토바이 8대를 모두 가동해도 현재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의도동의 A우동집은 “추우면 따뜻한 국물을 먹으려는 손님으로 매출이 증가하는데 올해 한파에는 아예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아 평소보다 매출이 20% 줄었다”고 푸념했다.

너구리족 덕에 TV 시청률은 증가했다.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평일인 지난 4~6일 시청률(39.1%)은 지난해 같은 기간(5~7일·36.6%)보다 2.5% 포인트 증가했다. AGB닐슨 관계자는 “1년 만에 시청률이 이 정도 증가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박유리 김경택 강창욱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