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版 ‘책 읽어 주는 남자’ 이야기
입력 2010-01-08 18:04
‘꾼’/이화경/뿔
“소설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생각 속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이야기의 힘을 믿거든요.”
이화경(46)의 두 번째 장편소설 ‘꾼’(부제: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은 오롯이 ‘이야기’의 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서사를 추동한다.
이야기가 주인공인 소설이라는 게 가능할 성 싶지 않지만 “이 시대 최고 이야기꾼의 탄생”(구효서)이라는 평처럼, 이화경은 이야기의 몸피를 빌어 우리 인생과 그 다채로운 풍경을 구성지게 풀어낸다.
작품의 배경은 조선 정조시대. 문체반정 역사 속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마저도 패관소품이 돼버린 시기였다. 성균관 계집종의 아들로 태어난 김흑은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길을 떠돌며 구구절절한 인생의 사연들을 듣게 되고, 이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세상에 팔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김흑은 우연히 영의정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예고된 비극 속으로 향해간다.
“세상에 사연없는 인생은 없었다. 인생의 사연 속에는 너무도 기이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중략) 쓰고 달고 시고 짠 인생의 맛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53∼54쪽)
작가가 배경을 정조시대로 삼은 것은 영·정조대를 우리나라 근대의 시발점으로 봤기 때문이다. 경제구조의 변화, 서학 유입 등 사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역사적 움직임이 태동되며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강해진 시기였다는 설명이다.
정조는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고 기독교까지 학문으로 인정한 왕이었지만 소설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작가는 “정조가 상상 속에서 형성되는 세계를 ‘가능’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이야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책에는 ‘아당(아담)’과 ‘액말(하와)’,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야소’(예수)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실 예수도 왕도 시민도 소설가도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세상은 결국 이야기에 담기기 마련이고요. 설사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끝없이 이야기하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것, 그게 삶이잖아요.”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가 쓴 소설 답게 서사는 엄청난 밀도로 진행된다. ‘혼불’을 계승하는 고품격 역사소설이라는 평(문학평론가 이경호)처럼, ‘꾼’은 고아하고 세밀한 문체로 사람과 삶과 이야기에 대한 내밀한 욕망을 파헤친다. 자료의 양도 방대하다. 작가는 영·정조실록 뿐 아니라 임금의 일기인 ‘일성록’과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읽으며 시대상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안의 이야기를 짓기 위해 ‘금병매’, ‘옥루몽’ 등 중국과 우리나라의 이야기책은 모두 구해 읽었다. 당시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사람들의 풍속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읽는 맛을 더해준다.
소설은 중첩 액자 구조다. 김흑과 그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늙은 기생의 사랑 이야기, 평생 독수공방한 양반댁 마나님 이야기 등 소설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수놓아진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이 얘기 하다가 저 얘기 하고 하는 식으로 말을 주고받잖아요. 그걸 소설의 형식으로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 인생이 일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중첩 액자 구조를 썼어요.”
작가는 소설의 틀을 통해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끝나지 않고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계속되기에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을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글을 쓰는 내내 김흑에게 혀를 빌려주었을 작가의 혀가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자못 궁금하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