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지자체 브랜드 감상기

입력 2010-01-07 18:49


“고장마다 '○○ 수도' 슬로건은 열등감의 발로… 입간판 속 단체장 얼굴도 지워야”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이 건보개혁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타운홀 미팅을 시도했다. 첫 방문지는 몬태나였다.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영접 나온 주지사 일행이 이상한 몸짓을 보였다. 두 팔을 어깨에 올렸다가 아래로 내려 꽂는 제스처를 수차례 반복한 것이다. 오바마 개혁안에 대해 반대여론이 강한 지역이라 야유하는 것인가? 일행의 얼굴에서 익살스런 웃음을 발견하고는 아차 싶었다. 몬태나 관광의 핵심인 플라이 낚시를 홍보하기 위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낚싯줄 던지는 동작을 재현한 것이다. 연어 모양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알래스카 공무원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었다.

우리 공무원들도 뒤지지 않는다. 지사, 시장, 군수 등 단체장들의 노력은 때로 눈물겹다.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누비는 화천군수는 입체 명함을 돌린다. 눕히면 수달, 세우면 산천어가 보인다. 수달이 사는 청정지역이자 산천어 축제의 고장임을 홍보하는 방법이다.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할 때는 손이 오그라든다. 교통카드가 닿는 부분에 ‘충주 방울토마토’ 스티커가 붙어 있다. 게이트에 따라 ‘충주 복숭아’ ‘충주 사과’도 있다. 땅을 지키는 농인(農人)들의 얼굴, 농산물 판매를 위해 애쓰는 공무원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명품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분투기도 많다. 강진군은 다산 선생을 스타로 내세우기 위해 초상화를 다시 제작해 공개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 잡은 다산초당을 이름 그대로 초가로 복원하는 계획도 있다. 통영시가 음악을 내세운 것이나, 함평군이 나비에 올인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의 일환이다.

그러나 늘 문제는 과잉이다. 늘 거슬리는 것이 ‘수도’라는 호칭의 남발이다. ‘지식수도 대전’ ‘생태수도 순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환경수도 창원’ 하는 식이다. ‘지식’의 속성은 수평적으로 퍼져가는 것이고, ‘생태’는 애초에 수도와 어울리지 않는 용어조합이며, ‘정신문화’에 무슨 서열이 있나 싶다.

오히려 ‘수도’ 자리에 ‘고장’이라는 말을 넣으면 더욱 포근하고 친근해진다. ‘수도’가 지닌 위압적·권위적·배타적 속성을 빌리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최고 선진용인’이나 ‘경제특별시 충북’도 비슷한 어법이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콤플렉스의 반영이다.

이보다는 구례군이 내세운 ‘자연으로 가는 길’쪽에 마음이 끌린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자연에다 전통 5일장의 풍속을 볼거리로 내세우는 전략이 상품으로 먹히는 것이다. 남해군의 ‘사랑해요 보물섬’도 소박하고 정겹다. ‘동북아해양관광물류중심도시’라고 하면 어디를 가리킬까. 인천, 무안, 여수, 당진? 정답은 목포다. 그러나 이런 길고 딱딱한 이름으로 도시의 차별성과 특성을 확보하긴 어렵다. 오히려 연평균 일사량이 국내에서 가장 많다는 기상청 자료도 있고 하니 ‘태양의 도시’가 어떨까. 미국 플로리다주의 닉 네임 ‘Sunshine State’처럼 말이다.

과잉의 다른 모습은 단체장들의 행태다. 대표적인 것이 광화문 지하도에서 해치마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충청북도 간판이다. 정우택 지사가 웃음을 머금은 채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청주국제공항이 있다’며 안내하는 내용이다. 실효성이 있을까. 누굴 겨냥한 광고일까. 꼭 지사가 등장해야 할까. 이런 유의 간판은 전국 곳곳에 산재한다. 고속터미널이나 역, 공항 주변에 유독 많다. 지역광고가 많은 YTN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다. 지역 특산물이나 관광자원을 잔뜩 소개한 뒤 으레 그 아저씨들이 나와 팔을 벌리고는 “○○로 오십시오!”를 외친다.

6월 지방자지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달아오르고 있다. 예전처럼 금품을 뿌렸다간 당선무효되기 십상이니 교묘한 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예산으로 선거 운동을 하는 입간판도 그 중 하나다. 굳이 지역을 광고한다고 항변하려면 단체장이 바뀌어도 철거하지 않는 내용으로 제작하는 것이 옳다. 선거의 문제가 아니라 품격의 차원에서 그렇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