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명호] 2010,오바마의 고민
입력 2010-01-07 18:46
지난 연말 한 송년 모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미국인 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어떨까”라고. 바로 돌아온 대답은 “별로 좋을 게 없다”였다. 그가 행정부에서 일해 본 경험도 있고, 지금도 연구소에서 워싱턴 정치권과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고 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요지는 오바마의 여러 개혁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의 국정 운영도 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11월에 있을 의회 중간선거 때문이다.
중간선거가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것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대통령 선거보다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덜하다. 당연히 선거 참여율은 낮을 것이며, 충성심과 당파성 강한 유권자들이 주로 투표하게 돼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오바마의 선거 전략은 반대 진영의 극렬한 반대를 몰고 올 현안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한 현안은 반대 진영을 결집시키기 때문이다. 결집은 곧 투표로 연결된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을 앞세워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붙이다 공화당에 대패했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아프간 전쟁과 일방주의적 외교에 신물이 난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일격을 당했다.
게다가 올해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갤럽)에서 오바마 지지율은 50%로 나타났다. 2년차를 시작하는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바마가 선거운동 시절 내세웠던 담대한 공약들은 속도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강성 민주당 유권자들이 불만을 표출할 것이나, 별 방법이 없다. 그들은 어차피 투표장에 가 민주당을 찍을 ‘집토끼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현상으로 보기엔 오바마의 진보 진영과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의 대결 구도로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 일종의 인종 편견이라는 뿌리 깊은 미국병(病)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이는 없다. 지난 한 해 오바마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건강보험과 세금 문제에 대한 반발은 백인 중산층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주류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많은 의석을 잃을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반(反)오바마 성향의 백인 중산층이 뭉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이번주 들어 중간선거에서 승리 가능성이 없는 민주당 상원 의원 2명이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정치 지형은 오바마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연말에 터진 항공기 테러 기도와 CIA 아프간 지부 자살폭탄 테러는 보수 진영의 오바마 때리기에 딱 좋은 소재가 됐다.
워싱턴에서는 공화당이나 보수 진영의 오바마 때리기가 근거가 미약하며 당파적이라는 비판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보다는 미국 기득권층의 비주류 대통령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현실적으로 더 크다. 틈만 나면 오바마 비판에 앞장서는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가 시청률에서 CNN을 앞선 것은 그런 분위기 탓이다.
오바마의 고민은 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한국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연초부터 시작된 테러 정국은 북핵 문제를 또다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의 평양 결과물에 대해서는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내부에서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은 중간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선거 전에는 추진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두 개의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오바마에게 2010년은 상당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굳건한 한·미 공조라고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 등에 안심할 때가 아니다. 오바마가 국내외 현안으로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치 환경에 따른 오바마의 한국 관련 정책 변경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냉철한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워싱턴=김명호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