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맞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힘으로 민원해결? 엄청난 노력과 법·절차로 해냈죠”
입력 2010-01-07 19:31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제도적으로 공무원이 부패하지 않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이 시대에 내가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권익위에 보장된 고위공직자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7일 취임 100일을 맞아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가 선진국 진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또 주민 민원이 너무 쉽게 이뤄져 ‘이재오 로또’라는 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힘이 있어서 안 되는 걸 되게 만든 게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돼야 할 것인데 오랫동안 안 되고 있었던 것들을 법과 절차에 따라 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익위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는데.
“아기들도 100일을 넘기면 잘 산다고 하지 않나. 나도 100일을 무난히 넘겼으니 장수하지 않겠나(웃음). 지난 100일 동안 155개 현장을 다녔고, 올해는 500개 현장을 찾을 것이다.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서민이나 어려운 사람들의 애로를 정부가 풀어주니 국민들도 정부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나한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게 정부의 친서민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했으면서도 평생 높은 사람 한번 못 만나고 살아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만 줘도 그분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올해 첫 성과는.
“현장조정회의가 지난 6일 부산에서 열렸다. 부산 남산동에 19세대가 입주해 사는 빌라가 있는데, 지난 1995년 건축주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돼 입주자들이 돈을 모아 마감공사를 한 뒤 들어와 살고 있다. 그런데 구청에서 승인 전에 입주했다는 이유로 준공검사를 해주지 않아 주민들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15년을 끈 민원이었는데, 공무원들이 책임문제가 뒤따르니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권익위가 책임을 지고 중재에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 주민들이 너무 좋아했고, 할머니들은 기뻐서 울기도 하더라.”
-민원이 너무 쉽게 해결돼 ‘이재오 로또’라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낡은 생각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권익위 조사관들이 수십 차례 현장을 방문하고, 각종 규정과 판례를 뒤진다. 탁상행정의 시각에서 본다면 로또가 맞다. 그러나 현장행정의 시각에서 본다면 엄청난 노력과 합의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묵은 숙원,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투쟁 이미지가 강했다.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이게 원래 내 모습이다. 독재시대에 민주화 투쟁을 하고, 야당을 10년 하면서 원내대표 등 정권과 싸워야 하는 위치에 계속 있었다. 맡은 일을 피하지 않다 보니 저항 이미지, 투쟁 이미지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패 방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2만 달러 선을 맴돌고 있다. 경제는 세계 10위권인데 청렴도가 40위권이다. 그동안 적당한 부패를 딛고 성장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부패가 선진국 진입에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공직사회 부패부터 뿌리 뽑는 게 이 시대에 내가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위공직자 개개인에 대한 청렴도 조사를 올해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하위직이라도 인허가 등 부패 취약부서에 있다면 청렴도 조사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 부패 공무원과 결탁한 비리기업은 정부 발주 계약에 입찰을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거나 계약을 따냈더라도 그 권리를 박탈하는 강력한 제도를 추진 중이다. 청렴도가 뛰어난 우수기관과 하위기관의 감사를 한달씩 교체 근무시키는 방안도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청렴시범학교도 확대할 계획이다.”
-부패방지는 권익위 힘만으로 어려운 일 아닌가.
“권익위가 나서니까 검찰과 감사원, 행정안전부 등이 경쟁심리를 갖고 부패 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내가 ‘점심은 5000원짜리 먹
자’고 제안했는데, 공무원 모두 꼭 5000원짜리 점심을 먹지 않더라도 어떤 취지인지 알게 모르게 퍼지게 돼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제도적인 부패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만큼 개별 비리를 척결하면서 경종을 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또 국세청 등 힘 있는 사정기관이 부패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나 7월 은평 보궐선거 출마설에 대한 생각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만 항상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기관이나 위원회에서도 국민과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에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 큰 일이 많은 해다. 여의도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지켜보고는 있다. 그러나 여의도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안 흔들린다. 쉽게 안 흔들리는 지혜와 용기를 갖는 게 중요하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 올해가 힘들다. 올해의 좌우명을 지족불욕(知足不辱)과 무욕상생(無慾相生)으로 정했다. 지족불욕은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남들에게 모욕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욕상생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다. 그렇게 살려고 한다.”
<인터뷰=신종수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