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언론 통폐합 실체… ‘포기 각서’ 거부하면 권총 협박
입력 2010-01-07 18:31
7일 공개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1980년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 과정에서 사용한 공권력 남용 과정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입 사실도 문서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11월 조사개시 결정 이후 2년 동안 4만5000쪽의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150여명의 관계자 진술, 29개 언론사가 제출한 서면답변과 증빙자료를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밝혀냈다.
신군부가 언론 통제를 위해 방송과 신문, 정기간행물 등을 합병·폐간시킨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진실위원회는 문서와 진술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를 재확인했다.
조사 결과 보안사는 계엄이라는 비상상황을 이용해 통폐합을 추진했다. 언론사 대표가 부재 중일 경우 권한도 없는 총무부장 등에게 대리로 각서를 작성케 했고, 각서 제출을 거부하면 권총으로 협박했다.
신군부는 무력을 사용하면서도 겉으로는 방송의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언론사 수뇌진을 교체하면서 동아방송(DBS), 동양방송(TBC), 대구한국FM, 전일방송, 서해방송을 KBS로 통합했다. CBS에 대해서는 보도·광고 기능을 정지시켰다. 지방지 통폐합 과정에서는 절차를 무시하고 언론사와 개인재산을 환수해 기부채납토록 했다.
7개 종합일간지 가운데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통폐합되면서 6개지로 개편됐다. 4개 경제지는 서울경제와 내외경제가 한국일보와 코리아헤럴드로 각각 통폐합돼 매일경제와 현대경제만 남았다. 통신사는 사실상 정부가 소유하는 연합통신으로 통일시켰고, 지방지는 1도 1사 방침에 따라 전국 14개 신문사가 10개로 재편됐다.
정권에 반대하는 1000여명의 해직 언론인에 대한 보복은 무자비했다. 이번 조사에서 해직 언론인 명단은 보안사가 선정해 각 언론사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직 언론인 30여명은 삼청교육대에 3주간 입소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대부분 해직 언론인은 취업이 제한돼 가정파탄, 생계곤란, 불명예 등의 고통을 당했다.
신군부는 내용이 외설적이고 부조리하며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정기간행물 172종의 등록을 취소시켰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 김준곤 상임위원은 “언론을 국가권력이 인위적으로 재편하고 권력에 반대하는 언론인을 해직시키는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엄기영 기자·진연석 대학생 인턴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