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파탄 책임자도 이혼청구 가능… ‘유책주의’ 예외 범위 확대 판결 잇따라
입력 2010-01-07 18:35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본인 잘못으로 부부 관계가 파탄에 이른 경우에는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던 기존 판례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불화로 가출한 뒤 남편과 11년 동안 별거한 A씨가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와 남편이 혼인을 계속하는 것은 혼인의 실체가 이미 없어졌는데 법률적 관계만 유지하는 것”이라며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이씨의 책임이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A씨는 1990년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뒀지만 남편의 잦은 음주와 외박으로 불화를 겪다 97년 가출해 11년간 별거한 뒤 이혼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손왕석)도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고 가출해 5년 이상 별거한 B씨가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혼인관계가 극도로 파탄돼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경우 혼인 유지는 상대방 배우자에게 껍데기에 집착하도록 유도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혼인생활을 유지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보복 등의 차원에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했다.
그러나 대법원과 서울가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파탄의 책임이 없는 배우자에게 이혼 의사가 없더라도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없어졌다면 이혼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유책주의의 예외가 점점 확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99년 도박을 일삼고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혼인을 지속할 의미가 없다”며 낸 이혼 소송에서 “파탄을 초래한 배우자는 혼인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