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차관 금통위 회의 참석 정례화 논란… 정부 “정책 공조”-한은 “출구전략 등 개입”
입력 2010-01-07 20:20
기획재정부 차관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참석 문제가 통화정책의 독립성 및 금융감독 체제 개편 방향 등과 맞물려 새해 벽두 민감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은과 정부 간 긴밀한 정책 협의 필요성이라는 재정부 설명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황에서 관례를 깨면서까지 정부가 ‘강수’를 둔 배경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금통위원들의 눈치보기가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매달 두 차례 정례적 참석=재정부는 8일 개최되는 한은 금통위 회의를 시작으로 앞으로 재정부 차관이 이 회의에 정례적으로 참석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금융위원회도 이날 앞으로는 금융위 관련 사안이 있을 경우 금통위 회의에 참석키로 했다고 말했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이를 관행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동안 예외적인 경우에만 금통위에 참석했다”며 “그러나 경제위기를 계기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 필요성이 강조돼 참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통위에서 출구전략을 하기에 아직 견고하지 않다는 등 정부의 경제 인식 등을 설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운용 및 정책 방향을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재정부는 외국의 경우 일본은 재무성 부대신과 내각부 심의관이, 영국은 차관급인 재무부 거시재정정책관이 통화정책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통위는 기준금리 결정을 위해 매달 둘째주 목요일, 공개시장 조작 결과, 대출 상황 등에 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넷째주 목요일 등 매월 두 차례 정기회의를 개최한다.
◇“출구전략과 금융감독 체계 영향 불가피”=정부는 한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금통위 열석(列席) 발언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실제 재정부 차관이 금통위에 참석한 것은 1998년 4월 9일, 99년 1월 7일과 1월 28일, 99년 6월 3일 등 네 차례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재정부 차관이 정례적으로 참석할 경우 금통위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재정부의 논리는 금통위원들이 재정부 차관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본인 판단에 달려 있어 독립성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위원들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미 경제정책협의회나 비상경제대책회의 등 한은 총재까지 참석하는 정책협의 경로가 많은데 굳이 열석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출구전략 시기 등을 정부 의도에 맞게 조율하고 핵심 이슈인 금융감독 체제 개편 등에서 한은 입지를 약하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한은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상정돼 있어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할 때에 이렇게 관행을 깬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부가 한은에 열흘 전쯤 열석 발언권 행사를 통보한 만큼 한은이 이날 발표한 ‘2010년 통화신용정책 운용 방향’에 이미 간접적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올해 통화정책 방향의 초점을 경기 회복세 지원에 두기로 의결해 기준금리 인상이 정부 방침대로 2분기 이후에나 단행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금통위를 앞두고 언론을 통하든지 다른 경로로 할 경우 여러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공식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충격 받은 한은=한은 직원들은 열석 발언권 행사가 합법적인 만큼 반대할 명분은 없다면서도 뒤늦게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한은 노동조합(위원장 배경태)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 정례화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중차대한 사건”이라며 “이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전 조합원을 동원해서라도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금통위원은 “정부 관료가 열석 발언하는 나라가 많지 않으며 정부가 예로 든 것도 영국 일본 정도”라며 “금통위원들은 통화정책 결정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지만 결코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Key Word 열석발언권
기획재정부 차관이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로 한국은행법 제91조에 명시돼 있다. 금융위 부위원장은 소관사항에 한해 참석 가능하다. 1998년 도입 이래 4차례 행사됐고, 99년 6월 이후부터는 행사된 적이 없다.
배병우 이성규 김아진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