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더이상 흑인 동네 아니다… 치안 안정 찾고 다양한 인종 거주지 변모

입력 2010-01-07 20:22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는 미국 뉴욕 할렘가 한복판에서 마약의 대부 프랭크 루카스가 백주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백인 경찰이 뻔히 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한다. 그 정도로 할렘가는 흑인과 범죄의 소굴로 묘사됐다. 뉴욕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현지 가이드들은 “할렘은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이라며 “가지 마라”고 겁을 주게 마련이었다.



지금 할렘을 방문한다면, 센트럴할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커피전문점, 갭이나 올드네이비 같은 중산층 브랜드 의류매장, 대형 DVD대여점 블록버스터 등을 보면서 “여기가 정말 할렘이 맞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심지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무실도 이곳에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할렘이 더 이상 흑인의 거리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외형뿐만 아니라 주민 통계에서도 이미 흑인은 소수로 전락했다. 한때 34만5000명까지 이르렀고 전체 할렘 인구의 64%를 차지했던 흑인은 2008년 인구조사에서 15만3000명으로 줄었다. 전체 할렘 인구의 41%였다.

할렘 중심부인 센트럴할렘에서도 1950년대에는 이 지역 인구의 98%인 23만3000명이 흑인이었다. 하지만 2008년 조사에선 62%인 7만7000명이었다. 반면 백인 가정은 2000년대 이후 2배로 늘어 10%였고, 히스패닉계 인구도 27%나 됐다.

NYT는 이 같은 할렘의 변화가 21세기에 들어와 본격화됐다고 분석했다. 뉴욕시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할렘이 밤에도 활보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자 도심의 값싼 주거지를 찾던 다양한 인구가 유입됐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재개발과 인구 변화를 불러왔다. 흑인 문화가 주류 문화에 편입되면서 거부감이 적어진 것도 한 요인이었다.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인 로라 머레이(31)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위치와 비용을 고려해 1년 전 할렘으로 이사왔다”며 “이곳에선 뉴욕의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동체 정신이 여전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흑인들을 위한 할렘의 주거 개선 프로그램이 집값을 올려 오히려 가난한 흑인을 내쫓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숌버그 흑인문화연구센터의 하워드 닷슨 총무는 “흑인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이곳에 집을 소유한 흑인은 극소수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며 “할렘에서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것이 좋은 일 아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