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주은] 캠퍼스에 두고 나온 것

입력 2010-01-07 18:09


오랜만에 나를 만나러 대학 캠퍼스를 찾아 온 친구들의 공통점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십 년 전에 여기에 뭐라도 두고 떠난 거야?” 친구들에게는 학교가 완전히 변모한 모습도, 또 어느 구석 달라지지 않은 모습도 모두 상처가 된다.

예전과 다르게 최첨단 설비를 갖춘 캠퍼스를 보면, 자기만 발전하지 못하고 그대로인 것 같아 속상하고, 변함없이 깜찍하고 발랄한 대학생들을 보면 저 혼자 초라하게 시들어버린 것 같아 서글프단다.

옛 친구들이 모이면 저마다 전에 알던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꺼내놓는데,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묘한 덧말이 붙기 시작한다. 못난 시샘에서 우러나오는 꼬인 말들이다.

“맞아, 대학 때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잖아?” 뛰어난 구석도 없고 존재감도 없었던 한 인간이 하는 일마다 뒤늦게 운이 팡팡 트여 엄청 재수 좋게 성공했다고 이야기를 한참 몰아가고 있는데, 구석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 하나가 독백하듯 이렇게 끼어든다. “열정이 있었겠지. 우리에겐 없잖아, 그런 열정.”

갑작스레 침묵이 싸하고 지나갔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끼어든 그 친구가 무안해져서 뭐라고 뒷수습을 했지만 잠시 동안 멍하니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정이야말로 신마저 감동하게 하여 행운이라는 신의 조력까지 필연적으로 얻게 만든다는, 누구나 다 아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를 공격하여 벙어리로 만들어버린 열정의 의미는 제대로 쓴 기억도 없이 어디에서인가 그냥 녹슬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열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년이 되었다고 해서 열정이 소멸해버린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열정의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중년들만의 문화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7080 세대’라는 좀 쾨쾨하게 묵은 듯 들리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애착 내지는 집착을 중년들만의 문화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문화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방식이자 생활양식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구매력을 갖추었건만, 몇 달 며칠 아끼고 기다리고 벼르다가 살 만큼 심취해서 혼신을 다할 만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 허허롭다. 뭔가 찾아보겠다고 고르다가 겨우 손에 들고 나온 것은 요즘 인기 있다는 걸 그룹의 음반이다. 그냥 어린 학생들이 열광하니까 사 본 것인데, 귀에 익숙한 곡도 제법 있기는 하지만, 내가 흥겨워서 듣는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매번 새해를 맞으면서 점점 뒤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열정일지도 모른다. 캠퍼스에 다녀간 친구들이 열심히 찾고 있었던 것도 혹시 어느 순간 놓쳐버린 열정 아니었을까. 왜 우리는 우리 세대의 열정을 캠퍼스에 남겨둔 채 그리 급히 내려온 것일까.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주은(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