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규장각 도서와 프랑스의 양심 불량

입력 2010-01-07 18:07

프랑스 법원이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를 반환하라는 우리 시민단체 문화연대의 행정소송을 지난해 말 기각했다. 취득 경위가 어떻든 프랑스가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국가재산이므로 반환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훔친 물건도 오래 보유하면 합법이라는 억지이니 프랑스가 이러고도 문화대국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장 폴 사르트르와 앙드레 말로의 나라가 맞는가.

병인양요 때 강화성을 점거한 프랑스군은 왕립도서관 분관인 외규장각의 도서 6000여권 중 일부는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 191종 279권을 발견한 후 반환 문제가 제기되었다. 프랑스는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경부고속철을 수주하기 위한 의도로 외규장각 약탈 도서 중 1권을 들고 옴으로써 반환의사를 보였지만 수주 후에는 소극적 자세로 버텨 반환은 물 건너간 분위기였다.

프랑스 법원은 병인양요 무렵에 약탈을 금지하는 국제규범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기각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그러나 약탈문화재의 반환은 전쟁범죄와 마찬가지로 시효가 없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소급도 가능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문화재를 약탈당한 나라들의 발언권은 갈수록 정당해지고 있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이 도난이나 도굴이 입증된 문화재는 원소유국에 돌려주고 있다. 그리스는 파르테논신전 대리석을 돌려받으려고 영국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있다. 우리도 신미양요 때 미국에 빼앗긴 장수기를 몇해 전 돌려받았다. 외규장각 도서도 제자리로 돌아올 때 가치가 더 빛날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프랑스 법원이 최소한 약탈 사실만큼은 공식 인정한 셈이다. 도서 반환에 대한 가부 판단은 법원이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프랑스의 양심’이 행동해야 할 차례다. 루브르 박물관은 도난 유물임을 알면서 사들인 고분 벽화를 지난해 말 이집트에 돌려주었다. 일개 시민단체의 노력에 맡길 일이 아니다. 민관이 힘을 합해 프랑스를 세게 압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