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전쟁은 일상 속에 있다

입력 2010-01-07 18:16


세계보도사진(World Press Photo)상은 1955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권위 있는 포토저널리즘상이다. 세계보도사진재단은 매년 초 전년도 보도사진을 인물, 뉴스, 생태, 일상생활 등 10개 부문으로 나눠 상을 주고, 그 수상작 중에서 다시 한 장을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한다.

‘올해의 사진’ 중에는 우리가 이미 시대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 꽤 많다. 68년 베트남 경찰서장이 베트콩 용의자를 거리에서 즉결 총살하는 장면, 72년 미군이 네이팜탄을 오폭한 마을에서 발가벗은 채 절규하며 뛰쳐나오는 베트남 소녀, 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당시 긴 탱크 행렬을 혼자 가로막고 서 있는 대학생 모습 등이 모두 ‘올해의 사진’이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때 찍은 두 장의 사진은 반전운동의 불씨를 지피며 역사를 바꾼 작품으로 꼽힌다.

2008년과 2009년 세계보도사진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포토저널리즘의 달라진 위상과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13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여 약 9만점의 응모작을 2주에 걸쳐 심사한다. 총 5단계 심사를 거쳐 후보작을 줄여나가다 보니 새벽까지의 심사는 기본이다.

전쟁사진가부터 전시기획자까지 다양한 색깔과 역할을 지닌 심사위원 사이에는 늘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가 공감한 부분은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포토저널리즘의 위상이 과거만 못하다는 점이었다. CNN이 전쟁을 마치 게임하듯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시대에 전쟁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시절만큼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나 자연재해, 재난 등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외면으로 현장에 있는 사진가들은 초조하다. 이 대목에서 심사위원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사진가의 개성이 강조된 다른 방식의 보여주기를 찾을 것, 그리고 더 많은 관객이 공감하는 사진을 발견할 것이었다.

한 해 동안 전쟁과 지진 같은 것을 실제로 겪는 사람들은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 된다고 한다. 전 세계 포토저널리스트의 90% 정도가 이런 대형 사건들에 매달린다. 그렇다면 포토저널리스트의 10%만이 인류가 겪고 있는 다른 90%의 문제, 즉 일상적 문제를 기록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해엔 ‘2008 올해의 사진’(사진)으로 재난이 아닌 일상생활을 다룬 작품을 선정했다.

미국 작가 앤서니 수아우가 타임지를 위해 1년 동안 작업했던 이 사진은 미국의 경기 불황을 그리고 있다. 전쟁터의 풍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가압류된 집을 보안관이 수색하고 있는 사진이다. 집주인이 강제 퇴거를 제대로 했는지, 혹시라도 노숙인이 빈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보안관은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총을 들고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로이터 부사장 아이페리 카라부다 에세르는 “전쟁의 한 장면 같은 이 사진은 21세기 초반 우리 모두가 전쟁 같은 일상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사진에 대한 공감을 표명했다.

송수정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