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A to Z… ‘떠다니는 산, 빛나는 꽃’… 판도라,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

입력 2010-01-07 18:19

“우주를 창조하는 건 힘들다. 세상에는 그런 일을 벌일 미치광이가 몇 명 있다. 힘겨운 일이지만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도전하고 있어 기쁘다.”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주간 ‘뉴요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주 창조를 시도한 ‘미치광이’ 예술가는 많지 않다. 성공한 경우는 더 드물다.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로 은하제국을 구축해냈고, 영국 작가 J R R 톨킨이 ‘실마릴리온’ ‘반지의 제왕’을 통해 3만7063년을 관통하는 가상역사를 창조했다. 애썼지만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만든 판타지는 너무나 영국적이었고, 미국 영화감독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는 완결된 우주에 한참 모자랐다.

캐머런이 최신작 ‘아바타’에서 구현한 미지의 행성 판도라(Pandora)는 여러 면에서 성공한 가상우주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산맥이 공중에 떠 있고, 나무는 뿌리로 소통하고, 낯선 종족은 외계 언어를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게 그저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따져보면 이유와 논리가 있다. 미리 치밀하게 준비한 판도라의 천문학과 생태학, 언어학 덕분이다.

‘아바타’ 제작팀은 기획 단계에서 단행본 200쪽 분량의 판도라 설명서 ‘판도라피디아(Pandorapedia)’를 만들었다. 왜 산이 떠다니는지, 외계 언어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설명서는 영화의 사실감이 빈틈없는 상상력에서 비롯됐음을 확인시켜준다. 판도라피디아를 토대로 판도라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정리했다.

판도라 천문학

알파 켄타우루스 A는 지구에서 4.37광년 떨어진 항성(태양처럼 빛을 내는 별)이다. 이 별 주위를 행성 폴리페무스가 회전하고, 판도라는 폴리페무스 주위를 도는 위성이라는 게 아바타의 공간적 설정이다. 태양, 지구, 달의 관계가 알파 켄타우루스 A, 폴리페무스, 판도라의 관계다. 여기엔 사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다.

실제로 우주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알파 켄타우루스란 별자리가 존재한다. 천문학자들은 300여년 전 이 별자리를 처음 발견한 뒤 켄타우루스 주위를 도는 행성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성과가 없었다. 캐머런의 상상은 바로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인간이 무인 탐사를 통해 폴리페무스라는 행성과 이 행성의 위성 판도라를 발견했다는 가짜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태양계의 달에 해당하지만 판도라는 여러모로 지구를 닮았다. 산과 계곡, 바다, 강이 있고 숲과 초원, 해초가 표면을 덮고 있다. 지구와 다른 점은 유독성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구보다 18% 높고, 화산 폭발로 대기에는 황화수소가 가득하다. 이 때문에 별도 기구 없이 인간이 판도라의 대기를 들이마시면 목숨을 잃게 된다.

지하에는 거대한 자기장을 품고 있는 언옵타니움(Unobtanium)이라는 이름의 초전도 물질이 매장돼 있다. ‘아바타’ 갈등의 근원은 바로 ㎏당 4500만 달러라는 이 신물질에 있다. 에너지원이 고갈된 지구의 인간은 이 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 나비족(族)과 전쟁을 벌인다.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자기장을 포함한 초전도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옵타니움은 의도가 있는 이름이다. 영어로 ‘구할 수 없는’이란 뜻의 ‘언업테이너블(unobtainable)’을 변형했다.

판도라 생태학

대다수 판도라 식물과 동물은 반딧불처럼 생체발광을 한다. 푸른색과 초록색이 다수지만 빨강 보라 등 가시 스펙트럼의 거의 전 색상을 볼 수 있다. 동물 발소리가 들리면 청록빛을 내뿜는 발광 이끼도 있다.

판도라 생태는 영화에서 조연급 역할을 해낸다. 나비족은 이크란이란 이름의 대형 육식 새를 길들여야 전사로 인정받는다. 이크란이 화려한 원색의 날개 4개를 펼치면 좌우 길이는 14m나 된다. 이크란은 날지 않을 때 네발짐승 모양이다. 판도라 전사들은 평생 한 마리의 이크란과 교감한다. 길이 25m로 이크란보다 몸집이 큰 데다 위협적인 붉은 몸체를 자랑하는 그레이트 레오놉테릭스는 주인공이 나비족을 설득해 인간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판도라 풍경 중 관객을 압도한 것은 단연 공중에 뜬 할렐루야 산맥이었다. 판도라피디아는 거대한 자기장이 산을 공중에서 지탱하는 일종의 울타리 역할을 해서 산이 떠다닐 수 있다는 ‘그럴듯한’ 설명을 붙였다.

판도라 언어학과 수학

판도라피디아에는 500개에 달하는 ‘나비-영어 사전’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만지다(touch)는 나비족 언어로 ‘암피’, 아들(son)은 ‘이탄’, 만개하다(blossom)는 ‘옹’이다. 이 어휘를 조합하면 영화 속에 자막 없이 등장하는 나비족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다. 캐머런은 언어학자 도움으로 어휘 문법 등 나비족 언어를 창조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언어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비족은 북미 인디언을 모델로 했다. 키는 평균 3m, 피부는 청록색, 고양이 같은 귀에 긴 꼬리를 갖고 있다. 꼬리는 해부학적으로 장신을 버티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 인간처럼 잡식에 사냥과 채집을 병행한다. 손가락이 4개인 것도 특징이다. 손가락이 10개인 인간과 달리 다 합쳐 8개여서 나비족 수학은 8진법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475=4×100+7×10+5×1이지만 판도라에선 475=4×82+7×8+5×1이 된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