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분쟁지역 소년병] 어른들 증오·폭력 때문에…총 잡는 어린 손들
입력 2010-01-06 23:53
아프리카 북부 수단에서는 지난해 11월 6명의 소년병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이 소년들은 다르푸르 반군에 참여해 수단 수도 인근에서 벌어진 전쟁에 투입됐다. 반군에만 소년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힙합가수 이메뉴얼 잘은 수단군 소년병 출신이다. “학교에 보내준다”는 약속을 믿고 아버지를 따라 나선 그는 13세 나이에 수단군에 징집돼 연필 대신 AK47 자동소총을 들고 싸웠다.
잘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 눈앞에서 어머니를 때리고 친척들을 유린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나 같은 소년병 동료 400여명 중 생존한 사람은 16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태=지난해 이스라엘의 하마스 폭격 당시에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인간방패’로 내몰렸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키스탄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납치돼 소년병이 되지만 생계를 위해 멋모르고 입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는 ‘종교적 확신’을 갖고 자원입대해 어른들의 증오심을 고스란히 이어받기도 한다. 소년들은 적게 먹고, 쉽게 설득되고, 적의 경계를 덜 받기 때문에 많은 군사조직이 이들을 군인으로 ‘양성’한다.
소년병만 있는 게 아니다. 소녀병들도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소녀는 자신이 7세 때 군사조직에 불려갔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허드렛일부터 첩보 수집, 군인들의 성노예까지 다양한 ‘병과’에 동원된다. 전 세계 소년병의 25~30%가 소녀인 것으로 인권단체들은 추정하고 있다.
소년병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콩고민주공화국, 코트디부아르,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이지만 이들 아프리카 후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영국에도 17세의 청소년 군인이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선에 배치된 사실을 인정한다. 국제적으로 18세 이하의 군인을 소년병이라 부른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뉴질랜드도 같은 군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전했다.
전 세계 소년병의 숫자는 30만명에서 21세기 들어 다소 줄었을 것이라고 FP는 분석했다. 앙골라 라이베리아 네팔 등의 내전이 종식됐기 때문이다. FP는 “전 세계 68억명 중 30만명은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어떤 나라에선 청소년 인구의 15%가 전쟁에 동원되고 있고 분쟁지역에 따라서는 전투병력 4분의 1이 소년병인 곳도 있다”고 전했다.
◇국제사회의 노력=유엔 아동인권협약은 15세 이하 청소년의 참전을 금지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15세 이하 청소년의 참전을 ‘전쟁 범죄’로 규정해 종전 후에라도 처벌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국제노동기구는 18세 이하 청소년의 입대를 ‘아동 노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매년 2월 12일은 소년병에 반대하는 ‘붉은 손의 날’이다. 2002년 이날 청소년들의 참전을 금지하는 아동인권협약 선택 조항이 발효됐다. 지난해 ‘붉은 손의 날’에는 코트디부아르와 기니의 전직 소년병들이 붉은 손도장을 유엔에 보내 소년병들의 치유와 복귀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전쟁은 어린이들에게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어른들이 남긴 증오와 폭력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것은 인류의 비극이다. 소년병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총과 폭탄 대신 연필과 공책을 잡게 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어른보다 작고 순진하고 순수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장에 내몰리고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