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윤재석] 국가 위상과 인권

입력 2010-01-06 19:01


"국격, 브랜드 파워, 국제 경쟁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인권인데"

올해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이 많다. 우선 작년 11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 올해부터 명실상부한 원조 공여국으로 발돋움했다.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유일한 사례다. 우리의 국격이 성큼 올라서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열게 된 것도 의미 있는 사건이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가 위상과 브랜드 파워도 자연스럽게 강해질 것이다.

올해는 수교 30주년을 맞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400억 달러 규모의 한국형 표준원자력발전(APR-1400) 설비 수출을 시작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의 국제 경쟁력도 한 단계 올라가게 됐다. 국격과 브랜드 파워, 국제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대도 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미흡한 부분이 아직도 적지 않다. 인권 상황이 특히 그렇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여성 등 정주 외국인 인구가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에 들어섰음을 방증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인권은 쉽게 도외시된다.

결혼이민여성이 배우자나 시집 식구에게 인권 침해를 당해도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한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는 법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핍박을 참다가 심한 경우 자살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결혼이민여성이 오히려 홀대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체류 기간이 지나거나 방문 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신분이 되어 버린 이주노동자는 차별과 착취를 당해도 외국인보호소에 송치되거나 추방당할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20만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3D 업종에서 내국인 노동 인력이 빠져나간 공백을 메워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어디 이들뿐일까. 지난 연말 가까스로 타결됐지만 철거민과 경찰 등 6명이 숨진 용산참사 문제도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부끄러운 사례다. 오죽하면 작년 11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국제사면위원회(AI)의 아이린 칸 당시 사무총장이 용산참사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제철거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도입과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제재할 수 있는 독립 기구 설립을 제안했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칸 총장이 이 같은 발언을 한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인권위가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2001년 창설된 인권위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 개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빈곤계층, 고령층 등 소외 계층의 인권 보듬기에 주력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작년 2월 행정안전부의 인권위 정원 30% 축소 통보를 시작으로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인권위는 ‘독립 기구인 인권위 권한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고 그 와중에 인권위원장이 임기를 남겨놓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퇴했다. 이어 자격 시비 속에 새 위원장이 취임했지만 스스로 인권위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내홍을 불러일으켰다. 출마만 하면 돌아올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위원장 자리도 포기했다. 급기야 아시아인권위원회가 ICC에 인권위의 등급 하향 조정을 요구했고, 유엔 경제·사회·문화 권리위도 인권위의 권한·조직 확대를 권고했다.

한 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파워, 국제 경쟁력은 외형적이고 계량적으로만 형성되는 것인가. 오히려 인권처럼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 요소부터 탄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해, 국격과 관련된 담론이 무성한 가운데 떠오른 단상이다.

윤재석 카피리더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