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집 담보로 연금받는 노인들 급증

입력 2010-01-06 18:32


지난해 12월 김모(76) 할머니와 장년의 딸은 부둥켜안고 울었다. 김 할머니가 수십년간 짓눌러온 딸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는 마음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딸의 눈물에는 어머니의 재산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했던 딸 내외는 금융위기 여파로 결국 석달 전 식당 문을 닫았다. 4년제 대학 수시합격자 모집에 합격한 손자의 대학 등록금은 고사하고 당장 먹고살기조차 힘들어졌다.

할머니는 며칠 밤을 고민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었던 할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맡기고 주택연금을 받는 길을 택했다. 할머니는 매월 60만원의 주택연금을 제외하고 일시금으로 나온 2400만원을 딸의 손에 쥐어주며 “미약하지만 이렇게라도 너와 손자를 도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지난해 집을 팔아 생활자금을 마련한 고령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금융공사는 6일 지난해 정부 보증 역모기지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가 1124명으로 전년도의 695명보다 62%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택연금이 첫 출시된 2007년(515명)과 비교하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주택연금은 60세 이상 고령자가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금융회사에서 노후생활자금을 연금방식으로 대출받는 제도다. 집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고령층에게 주거안정과 생활안정의 혜택을 동시에 주기 위한 취지다.

주택연금 보증 공급액 역시 증가했다. 지난해 공급액은 1조7474억원으로 2008년(8633억원)보다 배 이상 늘었다.

공사는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보유한 주택을 활용해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고령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공사 관계자는 “건강이 악화돼 안마사 일을 그만두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시각장애인 부부와 3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금을 자식들의 사업자금으로 모두 소진한 노인 등 생계가 곤란해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올해 신규 가입자 수는 지난해 실적의 두 배가 넘는 25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도 주택연금 판매 증가에 한몫했다. 공사는 지난해 3월부터 주택연금 월지급금 산정 기준인 대출한도를 3억원에서 5억원으로 높였고, 가입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하향 조정했다.

주택연금을 이용하려면 공사의 고객센터(1688-8114)와 전국 13개 지사를 통해 보증서를 발급받고 국민, 신한은행 등 9개 은행에서 대출약정을 체결하면 된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