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않고 타인과 사실혼때도 “부부 운전자보험 혜택 줘야”… 대법 ‘특별약관 해석’ 첫 판결

입력 2010-01-05 18:08

배우자와 이혼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살림을 차린 ‘중혼(重婚)적 사실혼’ 관계도 자동차보험의 부부운전자 특별약관의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률적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상태에 이르렀을 때는 중혼적 사실혼 관계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대법원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동부화재가 A씨 부부를 상대로 구상금 3400여만원을 돌려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2001년 강모씨와 결혼한 A씨는 남편 강씨가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자 이혼 절차를 밟지 않은 채 2003년부터 B씨와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B씨는 2005년 A씨를 부인으로 기재한 부부운전자 한정운전 특약이 걸린 자동차보험에 가입했다. 약관에는 ‘보험자의 배우자란 법률상의 배우자 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를 말한다’고 적혀 있었다.

얼마 뒤 A씨가 운전 중 사고를 내자 보험사인 동부화재는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A씨는 강씨와 혼인신고가 돼 있으므로 B씨와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A씨 부부는 동부화재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A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선 “법률상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맺은 사실혼은 보험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며 보험사 승소로 판결했다. A씨의 경우 배우자가 될 수 없지만 보험 모집인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까지 확인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비록 중혼적 사실혼 관계라 해도 법률혼인 이전 혼인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중혼적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혼 관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객관적·획일적인 보험약관의 해석 원칙에 관한 법리에도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보험약관의 해석은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일반 가입자가 이해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