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범조] 호화결혼 사회적 비용 너무 크다

입력 2010-01-05 17:28


친척이나 친구들의 자녀결혼식에 참석해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이들을 축하하는 일은 뜻 깊은 일 중의 하나다. 그러나 유명 호텔 등에서 나 보란 듯이 치르는 과시적인 호화결혼식에 참석해서 착잡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혼주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은 듯 수많은 화환을 진열해 놓고 혼주가 길게 줄 서 있는 하객을 맞는 모습을 보노라면 꼭 저렇게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지 의문이 나곤 한다. 서양의 유명 배우들이나 할 것 같은 호화찬란한 결혼식이 지금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체면문화가 허례허식 불러

우선 우리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체면문화가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 여유 있는 계층에 국한되었던 풍습이 남의 눈을 의식하는 풍토가 강한 우리사회 전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로 결혼식 문화에도 한국인에 특유한 쏠림현상이 작용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무리에서 혼자 처지거나 동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양떼효과 즉 쏠림현상이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벼락출세하거나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생겨 자기행동에 대한 절제가 배어 있는 선진국들의 지도층과 달리 이들의 졸부의식 또는 졸귀의식이 표출된 것 아닌가도 여겨진다. 이러한 과시적 결혼풍습과 관련하여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 행위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한 허용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제약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결혼문화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결혼식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이 과다하다. 수많은 하객들이 식장에 참석하는 데 드는 시간적 비용이 막대할 뿐 아니라 교통 유발과 결혼식 후의 쓸모없는 화환, 하객을 접대하고 남는 음식물 등 자원낭비가 따른다.

둘째,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위화감을 심화시킨다. 지도층이나 부유층 의 이러한 행위는 다른 계층의 소외감과 위화감을 증폭시키고, 이는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저소득계층을 외면하고 배려하지 않는 그들만의 소비행태는 다른 계층의 자조와 불평등의식을 심화시킬 것이다.

셋째, 자기의 귀중한 돈과 시간을 들여 식장에 가서 혼주에게 눈도장이나 찍고 오는 하객 개인의 이익이 불필요하게 희생된다.

넷째,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유한한 자원을 아끼는 녹색소비에 역행한다. 그간 소비가 환경에 미쳐온 부정적 영향에 대해 반성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방식으로 소비양식을 전환하는 것이 녹색소비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과시적 결혼식과 같은 자원낭비 행태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곤란하다.

부유층 절제 생활로 모범을

다섯째, 가까운 친인척을 모시고 조촐히 치르는 결혼의 실질적 의미가 변질되어 결혼식이 부나 권세의 과시를 위한 의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 결혼문화를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이 결혼식과 관련한 허례허식을 떨쳐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 속에 남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호화스럽고 사치한 결혼식에 대한 비판여론이 강하게 형성되어 호화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보편화될 수 있도록 신문, 방송 등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부자는 과시나 허영을 멀리하며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앤드루 카네기의 말이 이를 압축한 것이 아닐까? 선남선녀들이 가족과 친지를 모시고 검소하지만 뜻 깊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도록 하는 새로운 사회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김범조(한국소비자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