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경] 서른 즈음에
입력 2010-01-05 17:28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시간은 저대로 흘러 나이 서른이 되어버렸다. 그 노랫말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나만의 색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참 멋없게도 ‘일과 사랑’이라고 짧게 대답할 것이다. 더 의미심장하고 멋진 말들이야 많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알맞은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나의 일과 사랑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서른이 가져다주는 숙제인 것 같다. 근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평소 잘 만들어 올리던 보고서와 달리 내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머릿속은 얼마나 헝클어졌는지 내놓기가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난 실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뉘엇뉘엇 다가오는 서른이 좋고, 벌써 마흔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의 특별한 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와 믿음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생에서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하였다. 서른 살에 자립을 하여 마음이 확고히 서고, 도덕 위에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서른 즈음의 ‘자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얼마 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는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자립’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었다. 그룹 홈이란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한 가구당 5명 단위로 보호하는 소규모 시설을 말한다. 심포지엄 중에는 그룹 홈에서 생활하다가 만18세가 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호 없이 의무적으로 자립해야 했던 한 아이를 인터뷰한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 마을’이라는 그룹 홈에 살았다는 이 아이는 시설에서 잘 지내다가, 18세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자립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집부터 구해야 했는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어렵사리 혼자 살기에 적당하고 싼 집을 구해서 기뻐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고 한다.
살다 보니 반 지하라 낮에도 춥고, 문도 잘 안 닫히며, 한겨울에는 보일러 고장도 잦아 불편해도 계약기간 2년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런 실수 안 한다고, 앞으로는 똘똘하게 잘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자립의 길을 찾고 있었다.
공자가 홀로 서라고 하는 서른과 그 아이가 자립해야 하는 18세가 같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사람과 달리 시설의 규칙에 의해 억지로 자립을 요구받는 사람에게 ‘이립’이라는 말은 너무 멀리 느껴지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에 나이 서른에 정신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이립’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부터 가슴이 자꾸 움츠러든다. 종종걸음을 치게 하는 폭설에 핑계를 돌려본다.
이혜경(한국아동복지협회 기획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