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개인+공적 인격체 추구… 계몽주의 비판 “이광수류의 문학을 매장하라”
입력 2010-01-05 17:19
1920년대 연극계·문단 기린아 김우진의 생애와 문학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서 투신한 수산(水山) 김우진(1897∼1926)의 세계관과 그 천재성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갑부 양반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식민지 시절 일본 와세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1920년 도쿄에서 유학생들로 구성된 극예술협회를 조직해 이끌었고, 당시 우리 연극의 흐름을 주도한 동호회 순회연극단의 예술감독이었다. 24년 귀국한 그는 목포에서 희곡 ‘정오’ ‘이영녀’ ‘두데기 시인의 환멸’ ‘난파’ ‘산돼지’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아울러 ‘이광수류의 문학을 매장하라’는 평론을 통해 당시 계몽적 문학관을 통렬히 비판하는 등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동갑내기 여가수 윤심덕과 2년 뒤 현해탄에서 동반투신함으로써 스물 아홉의 생을 극적으로 마감했다. 유능한 청년 문사(文士)와 뭇 남성들이 선망하던 여가수의 동반자살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김우진은 뛰어난 극예술가이자 비평가였지만 연극과도 같은 생의 결말이 부각되면서 면모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었다.
윤진현(41) 인하대 한국학과 박사후연구원은 최근 출간한 ‘조선 시민극의 구상과 탈계몽의 미학-수산 김우진의 생애와 문학’(창비)에서 식민지 조선의 부르주아였던 김우진의 내면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대 김우진이 민중과 일체된 개인을 추구했다는 점에 근거해 그의 문학을 ‘시민문학’ 혹은 ‘시민극’으로 명명한 것은 이 논문의 새로운 접근법이라 할 만하다. 김우진이 자신의 삶과 문학 세계 전반에 걸쳐 구상했던 인간은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적 인격체’였다. 피지배자의 다른 이름인 국민이라는 단어가 풍미하던 시대에 조선 독립의 과제를 넘어 세계시민을 구상했다는 점에서 윤 연구원은 수산을 예언자적 지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윤 연구원은 “김우진은 한국 문학사상 단절과 연속을 숙명으로 지닌 하나의 섬”이라며 “그는 섬 안에 갇혀 한국 문학사 및 한국 희곡사와 입체적인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또 당시 카프를 중심으로 전개된 좌파 계급문학과 국민문학으로 대변되는 우파 순수문학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문학을 추구한 주인공 역시 김우진이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그의 작품 세계의 배경을 일본 유학 경험에서 찾는다. 김우진이 유학할 때는 일본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이 펼쳐지던 ‘다이쇼오(大正) 테모크라시 ’시기였다. 김우진은 미적 세계를 추구하는 탐미문학과 이상적 개인주의를 표방한 시라까바(白樺)파의 영향을 받았다.
인간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에 변화의 동력을 갖고 있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바라본 김우진은 당시 주류였던 계몽주의 문학을 비판하고 근대 극복의 인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연구원은 “수산의 문학은 기존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이란 단선적인 근대문학사적 인식을 새로운 인간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문학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며 “한국 문학사의 본령을 구성하는 도정에서 수산의 이름은 반드시 재조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