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폭설대란] 출근하니 점심시간… 퇴근 포기 회사 근처 사우나로

입력 2010-01-04 23:00


설국(雪國). 자고 일어났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73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린 4일 서울 시민들은 거대한 눈밭에서 잠을 깨야 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시민들은 극심한 교통 혼잡 속에 출퇴근 전쟁을 벌였고, 새해 첫날부터 대량 지각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출근은 고생 끝에 지각, 퇴근은 아예 포기=서울은 이날 오전 5시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출근 시간대인 오전 9시에 이미 17㎝가 쌓였고, 오후 들어 25㎝를 넘겼다. 밤이 되자 시내 도로는 빙판길로 변했다.

대다수 시민들은 버스와 지하철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엄청난 인파를 감당하지 못한 지하철과 버스가 연착과 고장 등 문제를 일으키며 출퇴근길은 대혼잡을 빚었다.

염창동 집에서 충무로 회사로 출근한 황인숙(34·여)씨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끝에 3시간이 넘게 걸린 11시30분이 돼서야 간신히 새해 첫 출근도장을 찍었다. 평소에는 30분 남짓 걸리던 거리였다. 황씨는 “남편과 함께 승용차를 끌고 아파트 주차장을 나왔다가 입구부터 서 있는 차들을 보고 다시 주차해 놓고 버스를 탔다”며 “지하철역 한 정거장 거리를 버스가 1시간이나 기어갔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규모 지각사태가 발생하자 일부 회사들은 시무식을 취소했다.

지하철은 지옥철이었다. 오전에는 지하철 교대역과 사당역에서 20대 여성이 1명씩 실신해 응급조치를 받았다. 오후 5시가 넘자 또다시 지하철은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기업들이 교통대란을 피해 조기 퇴근을 실시한 데다 승용차를 가지고 나왔다가 최악의 출근길을 경험한 사람들마저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귀가를 서두르는 지하철 인파 속에 갇힌 임산부가 사람들에 떠밀리다가 배를 움켜잡고 소리를 치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일부 회사원들은 퇴근을 포기한 채 야근을 자처하거나 근처 사우나 등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시내 도로 곳곳 폐쇄=도로 위에 차들은 한데 엉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눈이 많이 쌓인 탓에 자동차 바퀴들은 헛돌았다. 서울에서는 삼청터널길과 인왕산길, 북악산길, 은평터널길, 후암동길, 내부순환로 진입램프, 북부간선도로 진입램프, 잠수교 등 15곳이 한때 전면 통제됐다.

남산 3호 터널에서는 정차한 차량과 제설차량, 경찰 순찰차 등이 뒤엉켰다. 3호 터널 앞에서 차를 세우고 체인을 설치하던 안재형(32)씨는 “아무리 애를 써도 언덕을 오르지 못해 30여 분간 씨름하다가 근처 카센터에서 체인을 샀다”며 “약속시간을 넘긴 지 오래”라고 말했다.

통행량이 많은 서울 테헤란로나 종로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버스와 일반 차량들이 엉켜 하루 종일 소동이 벌어졌다. 눈길 접촉사고로 상대 운전자와 싸우는 장면도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퇴근길에는 사람들이 자가 운전을 포기하면서 주요 도로의 차량 통행량은 평소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나 중앙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인 데다 도로마저 빙판길이어서 차들은 시속 20㎞ 이하로 거북이 운행을 했다.

◇서울시, 또다시 폭설에 속수무책=제설장비와 인력이 총동원됐지만 사상 최대의 폭설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서울시는 오전 8시부터 가장 높은 3단계 비상근무에 돌입해 제설작업에 나섰다. 이날 뿌린 제설제만 4504t에 달했다. 그러나 하염없이 내리는 눈에 제설작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시는 군 수도방위사령부와 민간업체들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고, 제설장비를 보유 중인 민간기업에 도움을 부탁하기도 했다.

엄기영 백민정 전웅빈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