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유학길에 오를 때 나이가 만 12세. 예원학교를 중퇴하고 소년은 국비로 공부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대학을 택했다. 그 예비학교에 수석 입학해 비행기에 오른 순간, 소년은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세요. 자신감을 주세요.”
2010년 새해, 그 소년이 믿음의 청년으로 성장해 ‘꿈의 사람 요셉’을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을 떠나 문화와 기후 차이, 특히 신앙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요셉을 떠올리며 조기 유학의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미국 예일대 음악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주현(22)씨. 부모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 그저 기도하고 꿈을 키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 성도의 도움으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가끔 교회에서 반주자를 대신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성도들이 후원한 것이다.
박씨의 아버지는 “아이가 음악적 재능이 있어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다”면서 “‘조금 더 일찍 주현이의 재능을 키워줬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스스로 많은 일을 감당해줘 대견하다”고 말했다.
소년은 꿈을 개척해갔다. 2001년 예원학교에 수석 합격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교수 레슨 한 번 받지 않고 이 학교에 들어간 게 이슈였다. 그러나 학비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소년은 또 다른 길을 찾았다. 열두 살 소년은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대학 예비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시험을 치렀다. 교수 만장일치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예비학교에 수석 입학한 소년은 그 때부터 홀로 고단하지만 행복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첫 수업을 받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소년을 향해 “너희 나라는 버스가 있니?” “컴퓨터는 갖고 있니?” “(우리나라 50년대 사진을 보이며) 이게 지금 한국 모습이라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학생들이 지껄였다. 또 한 교수는 소년을 향해 “거기 이상하게 생긴 주현이 대답해 봐”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절대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노력했습니다. 현지 아이들보다 컴퓨터도 훨씬 잘 했고,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교수에겐 ‘늙은 원숭이 같은 선생님께 대답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또 나치 마크를 들이대는 학생들에겐 십자가를 더 깊게 대며 ‘할렐루야’라고 응대했고요.”
그래도 어린 소년인데, 왜 울지 않았겠는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음식점 아르바이트, 반주자로 뛰다가도 너무 힘들어 도로 한복판에서 대성통곡도 했다. 외국인이란 이유로 성적을 나쁘게 받으면 모든 걸 접고 돌아갈까 고민도 했다.
“요셉도 13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냈잖아요.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였을 거예요. 저도 요셉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자, 언젠가부터 아예 좌절 창피 실망이란 단어가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소년은 어느덧 성장해 연주자로서 이름을 알렸다. 2003년 이탈리아 베로나 오케스트라, 2008년 독일 괴팅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도 함께했다. 지난 11월엔 음악가라면 한 번쯤 서고 싶은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협연하는 기회도 가졌다. 지난해 최우등으로 모차르테움 국립대학을 졸업한 그는 그해 가을 미국 예일대 음악대학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힘든 상황도 그저 행복한 추억일 뿐이에요.”
소년에서 청년으로, 다시 10년 후의 모습을 준비하는 박씨의 꿈은 무엇일까. “최고의 음악가가 아닌, 그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희망을 연주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천재 소년서 믿음의 청년으로 피아니스트 박주현씨 당찬 소망 “희망 연주하는 메신저될 것”
입력 2010-01-04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