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의장국 국운 가른다] 국제사회 시각 달라져… 파워·지분율 높일 호기
입력 2010-01-04 19:25
(3) 한국, IMF를 개조하라
1997년 12월 3일, ‘저주받은 구세주’인 국제통화기금(IMF)은 벼랑 끝에 몰린 한국경제에 힘을 보탰다. 그 대가로 우리나라는 자금지원 의향서에 첨부된 경제프로그램 이행각서와 이면각서, 즉 ‘곳간 열쇠’를 넘겼다. 성장률·물가·금리·재정 목표치를 잡는 것에서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IMF로부터 숙제 검사를 받아야 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난해, 대반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태도가 달라졌다. 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했던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한국을 변방으로 보던 이제까지와 달리 대하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 유치 후의 일이었다.
◇IMF 개편 논의, 한국 목소리 내다=올해 G20 정상회의에서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는 국제기구의 개혁이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IMF 지분(쿼터) 5%를 과다대표국에서 과소대표국으로 옮기는 문제를 합의했다. WB 투표권 개혁안도 과소대표된 신흥개도국 등에 3% 이상의 투표권 이전을 추진키로 했다. 경제력에 맞는 발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지분율은 급변하고 있는 각국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기구에서 쿼터 비중은 그 자체로 의결권이다. 협정문 개정, 특별인출권(SDR) 발행, 지분율 조정 등에 있어 전체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결권이 높을수록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나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주요 국제금융기구인 IMF와 WB의 주도권은 각각 유럽과 미국이 쥐고 있다. 이는 각 기구 쿼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IMF의 경우 미국과 일본에 이어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상위 5위권에 랭크돼 있다. 국내총생산(GDP), 개방도, 외환보유액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한 산출방식대로라면 중국이 속하는 게 맞지만 그렇지 않다. 국제 정치적인 문제와 보이지 않는 텃세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번 개편에서 얼마만큼의 파워를 가질 수 있을까. 각국의 눈치보기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IMF 쿼터 증액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1월 개편을 앞두고 IMF 회의는 미국 워싱턴에서 4월과 10월에 각각 열리는 IMF·WB 스프링 미팅과 연차총회 두 차례가 전부다. 결국 오는 11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 그 결과가 확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의장국이면서 개최지로서 지분율 높이기에 좀 더 유리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정부도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더불어 IMF에서의 위치 굳히기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제적인 지위도 향상되면서 국제금융기구 내에서의 지분뿐 아니라 인력 진출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국제금융기구에 진출해 있는 한국 인력은 IMF 0.67%를 비롯해 총 0.7%에 불과하다.
◇IMF 굴욕은 ‘옛말’=아직도 우리는 IMF란 단어만 들으면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의 최후 수단으로 IMF에 국제금융 구제를 요청했다. 87년 마지막 융자를 받고 난 10년 뒤의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IMF에 가입한 55년에서 87년까지 총 16차례에 걸쳐 가벼운 도움을 받았지만 이후 가파른 속도의 경제 성장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었다.
굴욕적인 시간을 보낸 후 경제의 혈맥인 금융 부문을 시작으로 전방위에 걸친 대대적인 수술이 진행됐다. 수년이 흐른 뒤 한국은 글로벌 위기에도 가장 먼저 경기회복세를 보이며 세계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됐다.
남이 짜놓은 국제질서의 틀 속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해오던 이른바 ‘IMF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또한 굴곡진 IMF와의 인연 속에서 우리나라의 지분율은 꾸준히 높아졌다. 0.764%였던 쿼터는 2006년 1차 쿼터 개혁 당시 중국, 멕시코 등과 함께 100%가량 증가했다. 획기적인 상승률이었다. 이후 한국의 쿼터는 1.346%로 19위에 머물고 있다. 2008년 1.413%로 증액이 확정, 18위인 호주를 앞지르긴 했지만 각국의 국회 승인이 늦어져 발효되진 않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짧은 경제 발전의 역사와 외환위기 전력 등으로 아직 제몫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한국 GDP 규모가 세계 15위인 점을 반영한 IMF 공식 쿼터 계산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쿼터는 2.245%로, 가입국 186개국 중 10위에 들어야 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IMF나 WB 모두에서 세계 GDP 대비 한국경제 비중보다 낮은 수준의 지분을 갖고 있다”면서 “G20 정상회의 개최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 증액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이상 지분을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