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시] 새해 눈 오신다

입력 2010-01-04 19:47


새해 눈 오신다

고은(시인)


눈 오신다

눈 오신다

새해 아침 눈 오신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이 강산에 눈 오신다

눈 쌓이신다

눈 쌓이신다

내 마음 속 눈 쌓이신다

그렇지 않느냐

내달리는 길

내달리기만 한 길

쉬어가라고

눈 내리신다

펑펑 내리신다

밀치고

설치고

앞 다투는 삶

좀 뉘우치라고

눈 쌓여

여기 저기 삶의 길 막히신다

눈 쌓이신다

눈 쌓이신다

나뿐인 나

이웃도

세상도 없이

오직 나뿐인 세상 돌아쳐

오순도순 나누던 삶의 날들

찾아보라고

새해 아침

이토록

눈 내리신다

발등까지

무릎까지 쌓여

두메산골 막혀

혹시나 양식 떨어지지 않는지

혹시나 먹이 없어 굶어죽는지

내 실낱 걱정에도

눈 내리신다

눈 그치신다

다시 오신다

내 나라 온갖 드렁칡

온갖 재난 묻고

누구도

누구도

그 누구도

한결의 뜻 이루라고

눈 내리신다

지나온 백년

지나온 60년 30년 10년

뒤 돌아다보라고

맞이하는 내일

백번 펼쳐보라고

눈 오신다

눈 오신다

2010년 새해 아침 축복의 눈 이토록 쌓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