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사망 50주기 移葬 문제 또 ‘수면 위’… 사르코지 국립묘지 안장 계획에 좌파 지식인 “정치적 이용” 반발
입력 2010-01-04 18:43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1913∼60)가 사망한 지 4일로 50주기를 맞는 가운데 팡테옹 이장 문제를 놓고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노벨 문학상 작가인 카뮈의 유해를 프랑스 위인들을 안장한 국립묘지 팡테옹으로 이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아 좌파 지식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들은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이 카뮈의 유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카뮈의 아들 장 카뮈도 포함됐다. 그러나 카뮈의 딸 카트린은 좌파의 비판 자체도 카뮈에 대한 추억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트린은 RTL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아버지가 반(反) 사르코지 미사일로 변질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력자들은 일반적으로 카뮈를 좋아하지 않았다”며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버지를 대접하려는 것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카뮈는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빈곤 속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격려한 한 교사의 영향을 받아 고학으로 알제리 대학을 다녔다. 그는 24세에 첫 작품을 발표한 뒤 파리로 이주, 2차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에 레지스탕스에 참가해 지하 신문 ‘콩바(전투)’의 주필로 저항운동을 펼쳤다.
그는 42년 대표작인 ‘이방인’과 ‘시지푸스의 신화’를 발표, 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를 중심으로 부조리한 세상을 묘사한 소설이다. 모든 일에 감정이 없고 무관심한 뫼르소는 우연히 아랍인을 ‘햇빛 때문에’ 권총으로 쏘아 죽인다. 카뮈는 간결하고 명징한 문체로 이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는 좌파와 연대하기는 했으나 지적으로 매우 독자적인 인물로 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이를 비난한 몇 안 되는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연합뉴스